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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하는 비거노믹스-‘동물·환경 보호하자’ 육식 out! 식물로 만든 고기·의류·화장품 인기

“2019년은 비건(vegan·채식주의자)의 해.” (영국 이코노미스트) “죽을 때까지 비건의 삶을 유지할 것.”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채식은 일시적 유행 아닌 우리의 미래.” (미국 워싱턴포스트) 세계의 식탁이 달라지고 있다. 오랜 세월 인간의 주요 에너지원이자 혀를 즐겁게 해줬던 고기 대신,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해 고기 같은 맛과 영양을 내는 ‘대체육(식물성 고기)’이 확산되고 있다. 식품뿐 아니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식물성 원료로만 만든 화장품, 옷 등 뷰티·패션·자동차 시장에서도 관련 소비가 증가 추세를 보인다.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채식과 식물 원료를 활용한 산업을 의미하는 ‘비거노믹스(Veganomics)’가 급성장하는 분위기다

  ▶비거노믹스가 뭐길래

▷건강·환경보호 위해 ‘대체육’ 부상 211%.

지난 5월 2일 나스닥에 상장한 미국의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 ‘비욘드미트(Beyond Meat)’의 3주간 주가 상승률이다. 공모가 25달러로 시작한 비욘드미트는 상장 당일에만 주가가 두 배 이상 올랐고, 5월 16일 장중 한때 94달러까지 치솟으며 2주 만에 공모가 대비 4배 가까이 급등했다. 5월 23일 기준 78달러로 여전히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우버, 리프트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증시에 입성한 기업 상당수가 고평가 논란 속에 상장 직후 주가가 폭락한 것과 대조된다.

미국 버거킹 7000여곳에 대체육 패티를 납품하는 또 다른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 ‘임파서블푸드(Impossible Food)’도 최근 3억달러(약 3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2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배경에는 세계적인 비거노믹스 열풍이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 채식 시장은 2017년 10억5000만달러(약 1조2285억원)에서 2025년 16억3000만달러(약 1조9071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지난 5월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식품박람회에서도 비욘드버거 등 대체육 관련 상품이 10대 혁신상 명단에 두 가지나 포함됐다. 혁신상이 식품업계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대체육이 트렌드의 큰 줄기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비거노믹스 열풍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인구의 2~3%인 100만~150만명이 채식 인구로 추산됐다. 2008년 15만명에서 10년 만에 10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그중 완전한 채식을 하는 비건 인구는 50만명으로 추정된다.

채식 전문 식당은 2010년 150여곳에서 지난해 350여곳으로 8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동원F&B가 수입·판매하는 비욘드미트는 지난 3월 출시 한 달 만에 1만팩이 팔려나갔다.

지난 1월에는 국내 최대 비건 전문 박람회 ‘제1회 비건페스타’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114개 업체가 참가해 비건 식품은 물론, 패션&뷰티·비누·세라믹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전시, 3일간 1만4700여명이 다녀갔다. 주최 측은 행사 흥행에 힘입어 오는 7월 ‘제2회 비건페스타’ 개최를 준비 중이다.

채식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 육류는 식량 생산과 환경 측면에서 모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가 현재보다 20억명 증가한 95억명이 되고, 이들이 소비하게 될 육류는 연간 465만t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육류 생산량이 매년 2억t씩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소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약 15㎏의 곡물과 물 1만5000ℓ가 필요하다. 돼지고기, 닭고기 생산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를 대체육으로 바꾸면 식량 낭비는 물론, 축산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도 줄여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둘째, 생명윤리 문제다. 대부분의 육류는 급증하는 시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공장식 집단 사육 방식으로 생산된다. 태어나자마자 부리나 꼬리, 고환이 잘린 채 낮밤을 알 수 없고 옴짝달싹 못하는 비좁은 우리에 갇혀 억지로 사료를 먹다가 몸집이 커지면 도살되는 것이 식용 동물들의 운명이다. 육식을 줄이면 이 같은 동물학대를 줄일 수 있다.

셋째, 적당한 채식은 다이어트와 건강에 이롭다. 육식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은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이견이 있다. 그러나 과도한 육식이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감안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육식은 영양 과잉을 초래할 가능성도 적잖다.

이처럼 고기는 먹고 싶은데 지구와 동물, 건강이 우려되는 이들에게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식물로 만든 대체육이다. 그간 대체육 시장 성장을 가로막은 요인은 크게 두 가지. 고기맛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낮은 품질과 그러면서도 고기보다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고기 대체재로 주로 활용됐던 콩고기는 단순히 콩을 갈아 글루텐으로 굳힌 것이어서 맛과 식감이 실제 고기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비욘드미트의 성공으로 첫 번째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됐다. 비욘드미트 제품은 식물성 단백질을 추출한 뒤, 섬유질·효모 등 여러 식물성 원료와 혼합해 실제 고기와 매우 흡사하게 맛과 식감을 구현했다는 평가다. 단, 가격은 아직 고기보다 몇 배 비싸다.

업계 선두인 비욘드미트도 매출은 급성장하지만 이익은 못 내고 있다. 비욘드미트 매출은 2016년 1618만달러에서 지난해 8793만달러로 2년 만에 5배 이상 급증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순손실도 2515만달러에서 2989만달러로 늘었다.

물론 생산시설 확충, 유통망 확보 등 투자 영향이 크지만 초기 시장 확대를 위해 적정 마진을 못 남기고 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비욘드미트 제품은 일반 고기에 비해 단가가 높다. 미국 시장에서는 1파운드당 11.98달러에 판매 중이다. 일반 유기농 소고기는 1파운드당 6.99달러다. 그러나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연구개발(R&D)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다. 향후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단가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가격이 낮아지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시장조사업체 그리즐의 토머스 조지 회장 분석이다.

비거노믹스의 주무대는 역시 식품업계다. 콩고기는 물론 콩으로 만든 조미료·아이스크림·샐러드 등 관련 식품이 인기다.

CU는 지난해 3~5종에 불과했던 샐러드 제품을 올 들어서 17종으로 크게 늘렸다. 샐러드 제품군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23%에서 올해 5월 누적 기준 98%를 기록했다. GS25의 샐러드 11종도 올 1~4월 매출 증가율이 지난해 동기 대비 154%에 달했다. 이마트는 채식주의자를 타깃으로 한 아이스크림 브랜드 ‘스웨디시 글레이스(Swedish Glace)’ 수입, 판매에 나섰다.

스웨디시 글레이스는 콩으로 만들어 유당과 글루텐이 포함되지 않았다. 오뚜기는 일반적인 마요네즈에 사용되는 계란 노른자를 대신해 콩을 사용한 ‘담백한 소이마요’를 선보였다.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아 콜레스테롤 걱정이 없고 마요네즈의 맛도 즐길 수 있다는 평가다. 샘표는 한국 전통의 콩발효 기술로 만든 100% 순식물성 에센스 ‘연두’가 지난해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국제 자연식품박람회에서 ‘올해의 혁신 제품’으로 선정됐다. 비거노믹스는 식품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식습관이나 취향의 문제로 육식은 하되,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만큼은 최대한 동물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이들도 적잖다. 제품 개발·생산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성 원료도 사용하지 않는 ‘크루얼티프리(cruelty free)’ 제품이 대표적인 예다.

의류업계에서는 가죽, 모피, 실크, 울 등 동물성 섬유 대신 인조가죽, 인조모피 등 대안 원단을 사용한 브랜드가 각광받는다. 구찌, 아르마니, 캘빈클라인, 휴고보스, 랄프로렌, 지미추, 톰포드 등 명품 브랜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모피 사용을 중단했다.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런던패션위크도 지난해 9월 패션쇼부터 모피로 만든 옷을 금지했다. 휴고보스는 동물 가죽 대신 파인애플 가죽으로 만든 신발 라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파인애플 잎에서 섬유질을 추출해 고무 성분을 제거,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만든다. 기존 가죽보다 부드럽고 통기성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화장품 업계도 ‘비거니즘(veganism)’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은 2016년부터 연평균 약 6.3% 성장하고 있다. 유기농 화장품 전문 브랜드 ‘닥터브로너스’의 매출은 1998년 400만달러에서 지난해 1억2250만달러로 20년 만에 30배 이상 급성장했다. 배우 제시카 알바가 애용해 유명해진 비건 화장품 업체 ‘아워글래스’는 지난해 “모든 제품을 2020년까지 100% 비건으로 내놓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립스틱 등 색조 화장품의 필수 원료인 구아닌은 생선 비늘에서 얻어야 하지만, 이를 식물성 원료로 교체하겠다는 복안이다.

비건 열풍은 심지어 자동차 시장에도 옮겨붙었다. 자동차의 실내 소재를 천연가죽 대신 인조가죽이나 ‘천(fabric)’ 소재로 바꾸는 식이다. 일례로 테슬라는 현재 ‘모델X’의 가죽 시트를 인조가죽으로 바꿀 수 있는 옵션을 두고 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미래의 테슬라 모델을 ‘비건 자동차’로 만들겠다”고까지 밝혔다. 전문가들은 향후 비거노믹스 시장이 지속 성장할 것이라며 정부와 관련 업계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다.

이정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대체 축산물 개발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대체 축산물 식품은 기존 축산 대비 환경오염 경감과 식품안전성·영양학적 측면에서 일부 우수한 점이 존재한다. 해외의 유수 업체들은 선도적 시장 확보와 기술 선점을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에 반해 국내에서는 기업과 관련 연구기관의 적극적인 개발 모습과 시장 선점을 위한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체 축산물 시장은 향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기술 개발과 지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욘드버거 먹어보니 씹는 맛 아쉽지만 고기맛 흡사…몸·마음 편안해져

비욘드버거 먹어보니 씹는 맛 아쉽지만 고기맛 흡사…몸·마음 편안해져

대체육은 정말 고기의 그 매혹적인 맛을 대체할 수 있을까.

비욘드버거를 먹어봤다. 모양새는 일반 햄버거 패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큰 떡갈비를 연상케 하는 다짐육이다. 냉장고에서 해동한 직후 맡아본 냄새와 촉감도 고기와 비슷하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구우니 ‘지글지글’, 제법 고기 구울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 놀라운 점은 고기 못잖게 패티 자체에서 기름이 새나오더라는 것. 3분 정도 구우니 프라이팬이 기름으로 흥건해졌다. 식용유를 두르지 않고 구워도 됐을 것 같다.

드디어 시식. 스테이크처럼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한 덩어리를 입에 넣었다. 잘 구워진 고기에서 즐길 수 있는 단맛이 그윽하게 그대로 느껴진다. 특히 촉촉한 육즙이 입안을 가득 적셔줘 침샘을 자극한다. 비욘드미트 사에 따르면 코코넛 오일과 비트 추출물을 활용해 고기의 육즙까지 재현해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고기 특유의 질기지 않고 쫄깃한 식감은 살짝 부족하다. 보통 다짐육도 작은 덩어리가 씹는 맛을 주는데 비욘드버거는 그냥 씹는 대로 바스라진다. ‘고기는 씹는 맛’이라 외치는 육식남녀라면 아쉽겠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고기맛을 85% 이상 구현해낸 듯하다.

무엇보다 비욘드버거의 미덕은 먹고 나서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는 것. 227g짜리 ‘고깃덩이’를 연이어 두 개나 먹었는데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가볍다. 동물학대 걱정이 없고, 일반 고기에 비해 철분과 단백질이 더 많고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은 현저히 낮다고 하니 ‘입은 육식, 몸은 채식’을 한 기분이다.

채식의 단계별 정의

채소만 먹어야 채식?

육식 정도 따라 ‘천차만별’ 채식이라고 해서 고기를 전혀 먹지 않고 채소만 섭취한다는 뜻은 아니다.

채식은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크게 ‘채식주의자(Vegetarian)’와 ‘준채식주의자(Semi-Vegetarian)’로 구분된다.

채식주의자는 다시 4종류로 나뉜다. 육류·어류는 먹지 않지만 계란과 유제품은 먹는 ‘락토 오보(Lacto Ovo)’, 계란은 먹지만 육류·어류·유제품은 먹지 않는 ‘오보(Ovo)’, 유제품은 먹지만 육류·어류·계란은 먹지 않는 ‘락토(Lacto)’, 육류·어류·달걀·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을 일절 먹지 않는 ‘비건(Vegan)’ 등이다.

비건은 또 식물의 근간이 되는 뿌리나 줄기는 먹지 않고 열매만 먹는 ‘프루트(Fruit)’, 열로 조리하지 않은 생채소만 먹는 ‘언쿡트(Uncooked)’ 등으로도 구분된다.

준채식주의자도 세 종류가 있다. 평소에는 채식을 하되 상황에 따라 육류를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유제품·달걀·조류·어류는 먹되 돼지고기·소고기 등 붉은 살코기는 안 먹는 ‘폴로(Pollo)’, 유제품·계란·어류는 먹지만 육류와 가금류는 안 먹는 ‘페스코(Pesco)’ 등이다.

비욘드미트도 채식주의자만을 타깃 고객층으로 삼지는 않는다. 육류 소비자 전체를 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 인구 중 완전한 채식주의자(vegan)는 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기존처럼 육식을 즐기되 소비량을 줄이거나 대체육으로 서서히 바꿔나가는 것이 비거노믹스의 근간이다. [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0호 (2019.05.29~2019.06.0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9&no=369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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