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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노어’, 대표 김미아 인터뷰

도시의 소음을 잊게 해 줄 아름다운 가을의 하늘이 사나흘 계속되고 있다. 매년 가을 마주하게 되는 하늘 임에도 항상 새로 태어나 듯 구름의 디테일과 색감이 모두 다르다. 하늘 캔버스에 펼쳐진 유니크한 구름의 디자인만큼이나 클래식한 기본을 지키면서도 독특한 구두를 만들어 내는 디자이너 ‘김미아’ 대표를 만났다. 그녀의 공간 쇼룸바(SHOWROOMBAR)에서 지인을 만난 듯한 착각 속에 다정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공간에서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구두 그리고 와인 잔.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구두 전시에 시선을 빼앗겼고 와인잔이 진열되어 있는 공간에 한번 더 시선이 머물렀다. 와인 프라이빗 파티를 할 수 있는 쇼룸 문화공간답게 테이블에는 오늘을 위한 와인 잔이 세팅되어 있었다. ‘공간을 통한 추억’이라는 철학으로 탄생한 ELNORE의 SHOWROOMBAR에서는 신발이라는 공감대를 가진 이들을 위한 수많은 파티가 열렸을 것이다. 2023년 시즌 준비로 테이블과 바닥에도 여름 샌들이 분주히 진열되어 있었다.

“더운데 스파클링 와인 한 잔 하실까요?”

인터뷰 전까지 작업 중이었는지 밝은 미소와 함께 와인 잔과 얼음 통을 세팅한 테이블로 안내하였다. 냉동고에서 얼음을 꺼내 사정없이 콱콱 깨뜨려 얼음 통에 쏟아붓는 모습은 그녀의 털털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과하게 꾸미지 않았으나 세련된 스타일과 어울리는 음성과 발음. 이태리어로 “외국의 신”이라는 뜻을 지닌 ELNORE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듯 김미아 대표의 모습이 그랬다. 다문화 권의 독특한 개성을 흡수하여 강인한 정신과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글로벌한 여성을 의미하는 ELNORE와 그녀는 매우 닮았다.

슈즈 브랜드를 향한 열정

10대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신발 상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신발의 디테일을 관찰하곤 했다고 한다. 관능적이고 여성스러운 라인을 잘 보여주는 신발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때는 그저 신발을 좋아하는 신발 수집가였을 뿐이었다. 슈즈 디자이너로 업을 삼겠다 생각한 것은 20대 이후였다. 그 당시 슈즈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옷이 메인인 패션 업계에서 잡화(신발, 가방, 악세서리 등)가 패션의 한 파트로 따로 편성된 것이 20년도 채 안 되었으니 슈즈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배우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고 그 시절을 회상한다.

그녀에게 가장 크게 동기부여를 준 것은 ‘여행’이었다. 배낭을 메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도시의 여자들이 신고 있는 신발을 사진 찍어 모으기 시작했다.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진 중요한 순간이다. 직접 발로 뛰어 몸으로 깨우친 경험들은 크나큰 자산이 되었다. 지금의 그녀를 만든 것은 그녀의 사진 속에 담긴 수 많은 각국 여성들의 신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멈춰 있는 관광지의 건축물을 바라보는 것보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이 담긴 움직이는 신발을 바라보는 것이 그녀의 시각을 더 넓혀줬을 것이다.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다

수많은 여행 속에 가장 신비로웠던 도시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였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차도녀는 웅장한 자연이 주는 압도감에 매료되었다. 오래된 건축물과 함께 공존하는 거대한 나무를 보며 인간으로서의 겸손함을 가지고 자연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야 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배낭을 메고 떠난 세계에서 여러가지 상황을 마주했다. 그 중 본인의 삶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었다. 동남아 국가였던가 우연히 지나던 전통시장에서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의 공포 서린 눈빛을 본 순간이었다.

그 사건을 인하여 동물 도축에 대한 윤리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적어도 나는 육식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후로 그녀는 15년 동안 비건을 실천하였고 현재도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고 하니, 동물에 대한 그리고 생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신념은 구두를 제작함에 있어서도 동물 보호와 환경보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선택은 최대한 가공 단계가 적고 오염도가 덜 한 방식, 친환경을 지향하는 공장에서 가죽을 수입하는 것이었다. 신발을 제조할 수 있는 리소스에 대한 부분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동물 보호와 환경에 부담이 덜 주는 방법에 대해 한번 더 신경을 쓰고 검토한다.

그녀의 생명 존중에 대한 가치는 비단 동물과 환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생명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향하였고 현재는 소외계층 청소년에게 신발을 제공한다든지 하는 개인적인 후원을 진행 중이다. 나의 재능이 누군가에게는 지친 일상을 위로해주는 기분 좋은 선물이 된다고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뜻 깊은 일이라며 밝은 표정을 드러낸다. 앞으로 엘노어의 고객들과 프로젝트 단체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함으로 여러 사람이 사회활동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로의 삶

그녀가 디자인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름이 아닌 ‘유럽의 문’이었다. 유럽의 문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네모난 문이든 아치형의 문이든 그 안의 디테일이 모두 다르다. 컬러 배합도 미묘하게 다르고 디테일한 장식의 높이 너비 등 모든 것들이 다채로우면서 밸런스가 훌륭하다. 그런 밸런스를 캐치하여 신발 디자인의 좋은 재료로 사용한다. 그녀가 디자인 한 구두 중 굽에 ELNORE라는 글이 써진 마치 에펠탑을 연상시키는 타워 힐이 인상적이다. 집에서 TV를 보다가 갑자기 영감을 얻어 디자인을 했다고 덤덤히 말했으나 그녀의 아이디어는 이미 과거 그녀의 수 많은 걸음들 속에서 머리 속에 각인되었던 유니크한 아이디어가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녀의 수고스러운 걸음들이 결실을 맺은 귀한 순간이다.

슈즈 디자이너가 되면서 달라진 것은 좋고 싫음에 대한 기준이 더욱 명확해 졌다는 것이다. 예전엔 단순히 예쁘다는 감상에 그쳤다면 현재는 예쁜 이유에 대하여 패턴의 라인인지, 컬러인지, 소재 인지 구체적으로 세분화하여 아름다움의 이유를 정확히 찾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이 선호하는 디자인의 차원을 넘어 대중에게 통하는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이다. 주관적인 디자이너의 시각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일에 대해 익숙해지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분석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 막연한 요소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부분 역시 갖춰야 하는 디자이너의 능력이다.

신발을 제작하는 공장에서 ELNORE 대표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통한다. 적당히 타협하면 좋겠지만 일에 대한 그녀의 완벽주의는 적당히를 모른다. 패턴 수정을 15번정도까지 한 적이 있었다. 평소 성격은 허당에 가까운데 왜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궁서체로 진지해지는지 모를 일이다. 초반에는 공장과 기 싸움이 대단했지만 현재는 본인의 스타일에 최대한 맞게 끌어가고 있다고 한다. 단, 단가가 오르는 수고스러움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래도 퀄리티만 좋다면야 문제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웃음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인싸 느낌의 그녀는 의외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혼자 와인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 정적인 상태에서 잠시 생각을 멈추고 진정을 시킨 후 이성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래도 내가 만든 디자인이 고객에게 선택이 되어야 하고 다른 디자이너들과 끊임 없는 경쟁 상황에 놓이기에 이 직업은 자칫 잘못하면 본인에 대한 자존감이 도를 지나쳐 교만함으로 변질 될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항상 이런 것들을 경계한다. 그녀의 겸손함은 단시간 만들어진 인성이 아닐 것이다.

20대 초반에 그녀가 기대고 살았던 말은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말이다. 몸에 문신을 새길 생각까지 했다니 참 소중히 품고 살아온 말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래 성격대로 천천히 느리게 가고 싶었지만 디자이너, 디렉터라는 위치는 느린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본성을 거스르고 성과를 이뤄내기 위하여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 그때 본인을 다독여주고 채찍질했던 문구가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였다. 다행히 순간 집중력이 높아 순식간에 몰입이 가능하다는 특 장점을 가지고 있었고 3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내공을 쌓은 결과물이 ELNORE로 탄생하였다. 20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그녀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은 그녀를 지금의 위치로 데려다주었다. 앞으로의 그녀의 탑이 그녀를 어디까지 더 성장시키는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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