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없는 제사상
지난해(2019년)는 ‘황금돼지의 해’였다. 상징적인 이름과는 달리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돼지들이 살처분을 당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된 주된 원인은 돼지가 먹는 사료(잔반)에 감염된 돼지고기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돼지에게 돼지를 먹일 수 있다는 생각과, 인간이 고기를 먹기 위해서라면 돼지가 좁은 우리에 갇혀 평생을 살다 도축되어도 된다는 생각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인간중심적인 폭력을 뒤집어 생각해보는 것이 비거니즘이다. 2019년은 비건 이슈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논의된 해이기도 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음식뿐만 아니라 옷, 화장품, 생활용품까지 동물을 착취하여 만드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채식은 단순히 고통받는 동물을 구원하고 싶어하는 얕은 실천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서 떳떳하게 살 수 있을지에 관한 관점이다. 비건을 실천하는 것은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 육식을 줄이면 가축을 먹여 키우고 도살하여 운반하는 데에 드는 에너지, 그리고 가축들이 뿜어내는 가스를 줄일 수 있다.
비건 제삿상이란?
산적 꼬치엔 게맛살 대신 콩으로 만든 햄과 버섯이 꽂혀 있다. 노르스름한 동그랑땡은 달걀옷이 아닌 ‘카레 전분물’을 묻혀 완성됐다. 새우살을 발라 만든 줄 알았던 꼬치는 알고보니 새우 모양을 낸 곤약이다.
고기라곤 일절 사용하지 않은, 완전한 채식 재료로 만든 이른바 ‘비건(Vegan) 차례상’이다.
경기도 하남시의 자택에서 만난 49살 이신정 씨. 올해로 벌써 15번째 비건식 차례상을 차렸다. 이 씨는 “채식만으로도 차릴 수 있는 차례 음식이 정말 많다”며 준비한 차례상을 선보였다. 이날 이 씨의 차례상에는 앞서 본 산적과 곤약 새우를 비롯해 20가지가 넘는 음식이 올랐다.
비건 유튜버 하리씨의 컨텐츠를 소개한다. 고기 산적 대신 양념에 재운 콩단백 구이를, 계란물에 부친 생선 대신 밀가루물에 부친 채소전을, 해산물 동그랑땡 대신 두부로 빚은 동그랑땡을 준비한 영상이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 하루에 한 끼, 혹은 명절이나 행사 때 비건 채식을 하는 것만으로도 식량 위기와 기후변화, 동물보호 등 여러 관점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특히, 비건식 차례상을 언급하며 “불고기나 육류가 아닌 대체육으로 만든 비건식 차례상의 경우, 온실가스를 10분의 1 정도 감축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며 채식이 환경에 미치는 순기능을 강조했다.
한국채식연합은 우리나라의 채식 인구가 10여년 전보다 10배 정도 늘어난 20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건강과 다이어트와 같은 개인적 차원에서 동물 보호와 기후 위기 등 사회적 차원으로 그 범위가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환경과 사회를 위해 내 식탁에 오르는 음식부터 바꾸자는 ‘착한 먹거리’를 찾는 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