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가 바꾼 Feed the Future Innovation Labs, 글로벌 기아 연구의 축이 흔들린다

니제르 사헬의 진주조 농가에게 가장 두려운 재난은 가뭄이나 홍수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더 잦아진 극한의 더위와 변덕스러운 강수는 해충의 ‘타이밍’을 앞당기고, 짧은 창에 한꺼번에 퍼진 피해는 한 해 식량을 통째로 무너뜨린다. 그런데 그 현장 연구를 멈춰 세운 것은 날씨가 아니라 미국 정책이었다.

Grist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USAID를 사실상 해체한 뒤 글로벌 기아 대응 연구의 핵심 축이었던 Feed the Future Innovation Labs가 ‘미국 우선주의’ 기준으로 재설계되고 있다. 기존에 아프리카 저소득 지역을 중심으로 구축된 국제 공동연구망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연구 공모 문서에서 기후 관련 우선순위가 사라지고 연구자들이 용어를 ‘검열’하듯 바꿔 쓰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기아와 기후, 농업 연구의 접점이 재편되는 셈이다.

Feed the Future Innovation Labs는 앞서 보도한 스발바르 씨앗 금고, 기후 변화에 강한 작물 수천 종 추가 보관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니제르의 진주조를 위협한 해충, 그리고 끊긴 연구

니아메이에서 작물 육종을 하는 바시루 사니 부바카르 가오흐는 니제르의 주요 주식 작물인 진주조, 쌀, 수수 재배가 기후변화로 얼마나 불안정해졌는지 현장에서 체감해 온 연구자다. 사헬 지역은 평균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온이 오르고, 극심한 가뭄과 폭우, 돌발 홍수가 번갈아 나타난다. 이런 조건은 작물 자체의 스트레스를 키울 뿐 아니라 해충의 확산과 폭발적 증식을 돕는다.

그가 특히 경계해 온 해충은 진주조 이삭 속에 알을 낳아 유충이 꽃과 낟알 형성 부위를 안에서부터 갉아먹는 ‘밀릿 헤드 마이너’로 알려진 나방이다. 피해는 겉에서 바로 드러나지 않아 방제가 늦어지기 쉽고, 건조한 토양이나 파종 시기 같은 재배 관행이 겹치면 피해가 커진다. 가오흐는 흉년에는 한 가구의 수확 상당 부분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니제르에서는 약 240만명이 급성 식량불안을 겪고, 160만명의 아동이 급성 영양실조 상태라는 수치가 거론된다. 수확 손실은 소득 감소를 넘어 식탁 자체가 줄어드는 문제로 직결된다.

그는 2024년 11월, 농가가 해충과 병해를 조기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진단 방문과 교육을 결합한 현장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가 맡은 농업 연구 허브와 협력해, USAID의 Feed the Future Innovation Labs 자금으로 추진되던 사업이었다. 팀은 PlantVillage 같은 모바일 기반 예측 도구를 활용해 해충과 병 발생을 감시하고, 농민들이 실제로 해충을 식별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했다. 가오흐가 강조한 핵심은 ‘시간’이었다. 알에서 유충으로 번지는 짧은 구간에 맞춰 경보를 읽고 대응해야 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1월, 팀은 천적을 활용해 밀릿 헤드 마이너를 억제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니제르 농업부와 데이터를 국가 감시 체계에 연계하는 논의도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2025년 1월 24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내려진 업무 중지 명령으로 USAID의 해외 프로그램이 대거 중단됐고, 이후 기관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미국 대학을 거점으로 한 17개 핵심 Innovation Labs 대부분이 종료 통보를 받았고, 니제르 현장 팀도 해산됐다. 가오흐는 후원자의 소액 지원으로 일부 업무를 이어갔지만, 연구를 지속할 자금은 좀처럼 구하지 못하고 있다.

Feed the Future Innovation Labs의 ‘미국 우선주의’ 재설계

Feed the Future Innovation Labs는 원래 미국 대학의 연구 역량과 현지 파트너 네트워크를 연결해 농업 생산성, 병해충 관리, 영양 개선 등을 다루며 저소득 국가의 식량안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Gris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가을 해당 프로그램의 7200만달러 지원을 공식 취소하며 USAID 지출을 ‘각성’, ‘무기화’, ‘낭비’로 규정했다. 이후 대부분의 연구실이 문을 닫았고, 예외적으로 캔자스주립대학교의 ‘기후 회복력 곡물’ 연구실만 유지됐다가 명칭도 ‘Innovation Lab for Cereals’로 바뀌었다.

대법원 판결로 대통령이 의회가 배정한 자금을 보류할 재량이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으면서, 연구 현장은 정책 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2026년 3월 국무부는 Innovation Labs를 부활시키는 새 공모를 냈다. 미국 내 대학들이 공개 경쟁으로 참여할 수 있고, 5개에서 7개 과제 선정, 과제당 2000만달러에서 4000만달러 규모가 예상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공모 문서에는 ‘미국 정책과의 정렬’,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표적 연구’ 같은 표현이 등장했고, 전직 USAID 관계자들과 연구실 책임자들은 “부활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우려를 키운 대목은 연구의 중심 지리와 의제의 재배치다. 전직 USAID 식량안보국 관계자 짐 개프니는 평가 기준 문서에서 아프리카가 사실상 뒷부분의 짧은 분량으로 처리됐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가 명시적으로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중요도가 낮아진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안서 단계에서부터 ‘아프리카 중심 연구는 불리할 수 있다’는 위축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동시에 공모 기준에서 기후 관련 연구 우선순위가 지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들은 이에 맞춰 제안서에서 ‘기후변화’ 표현을 빼고 ‘가뭄’ 같은 단어로 바꾸는 식의 언어 조정을 했다고 전해졌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전 혁신연구실 책임자 데이비드 휴스는 정부가 제안서를 단어 검색이나 자동 도구로 훑을 수 있다고 보고 표현을 바꿨다고 말했다. 기후 리스크가 병해충과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프로그램에서, 정작 기후를 직접 언급하기 어려워지는 역설이 벌어진 셈이다.

아프리카를 덜 말하게 되는 순간, 글로벌 식량안보도 흔들린다

아프리카의 우선순위 하락이 민감한 이유는, 대륙의 기아 인구 규모가 이미 다른 지역을 앞질렀다는 지표가 나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엔 기구들이 발표하는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 보고서에서는 아프리카가 굶주림 인구가 가장 많은 대륙이 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온 상승 폭도 전 지구 평균보다 더 큰 지역이 적지 않아, 생태계와 농업, 경제 전반이 흔들리는 구조적 위험이 커지고 있다. 유엔 세계기상기구 수치로 2024년 홍수, 폭염, 가뭄이 70만명 규모의 이재민을 낳았다는 점도 이러한 압력을 보여준다.

Feed the Future Innovation Labs는 단순 원조가 아니라 현지의 농업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장치였다. 병해충 감시, 품종 육종, 재배 기술, 저장과 유통 같은 실용 영역은 기후 충격이 커질수록 중요해진다. 그런데 연구의 초점이 서반구로 이동하고 아프리카 관련 제안이 위축되면, 사헬 같은 기후 취약지에서 축적되던 데이터와 현장 네트워크가 끊길 수 있다.

개프니는 “아프리카의 문제를 풀면 미국의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고 Grist는 전했다. 실제로 병해충과 식물 질병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이동한다. 지금은 사헬에서 심각한 문제가 미국 농업 지대에서도 미래의 위험이 될 수 있다. 연구자들이 아프리카 파트너들과 함께 축적하던 유전적 저항성 자원, 적응형 재배법, 저투입 방제 전략은 글로벌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이런 지식은 화학 농약 의존도를 낮추거나, 생태계 기반 방제를 확대하는 데도 연결된다.

이 지점은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과도 맞닿아 있다. 기후 리스크가 커지면서 생산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품종 전환과 작부 체계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단백질 공급원 다변화와 식물성 식품 시장 확대 흐름도 강화되고 있다. 사헬과 서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재배된 콩과 작물이나 잡곡은 가뭄과 고온에 강한 특성으로 재평가돼 왔다. 국제 공동연구가 줄어들면 이런 작물의 품종 개량과 병해충 대응 기술도 늦어질 수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는 식물성 식품 원료의 공급 안정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에 이익’이라는 프레임이 연구를 바꾸는 방식

국무부는 Grist에 보낸 답변에서, Innovation Labs의 심사가 공개된 기준에 따라 이뤄지며 신청 기관이 위치한 주의 정치적 특성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동시에 해외 지원과 연구 투자는 미국 농민과 연구자, 납세자에게 ‘직접 이익’이 되어야 하며 이전 행정부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국익’에 맞춰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이 프레임은 연구 현장에서 언어와 지리, 협력 구조를 바꾼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팀은 제안서에서 ‘기후변화 스트레스’ 같은 표현을 ‘가뭄’으로 바꾸고, 대상 국가 범위를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페루와 함께 가나, 코트디부아르, 케냐, 네팔 등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조정했지만 최종적으로 탈락했다. 제안서에 니제르의 가오흐 연구를 이어간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치적 파장도 뒤따른다. Grist가 입수한 예비 명단에 따르면 최종 단계로 올라간 제안들은 캔자스주립대, 미시시피주립대, 플로리다대학교, 오번대학교 2개 과제, 클렘슨대학교, 조지아대학교 등 공화당 우세 지역의 기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클렘슨의 경우 하와이대학교와 협력해 예외적으로 ‘블루스테이트’ 연결고리가 있다고 전해졌다. 또 2026년 6월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 미시시피의 신디 하이드 스미스 상원의원이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러셀 보트에게 미시시피주립대의 수산 연구실 보호를 요청한 뒤, 같은 연구실이 다음 단계에 올랐다는 정황도 보도됐다. 국무부는 9월 30일까지 예산을 과제에 배정하겠다고 했지만, 선정 과정의 독립성과 연구의 공공성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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