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에서 데이터센터를 돌릴 전기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규제 아래서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전력망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데이터센터가 자체 전력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미 환경보호청 EPA의 새 지침이 그 ‘자체 전력’ 설비를 일부 핵심 대기오염 감시 체계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Grist는 EPA가 전력망과 연결되지 않은 ‘데이터센터 섬전력 발전소’에 대해 Clean Air Act의 산성비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지침을 내면서, 발전소 배출을 상시로 측정하고 공개하도록 요구해온 가장 신뢰도 높은 도구 중 하나가 약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력요금 부담을 피하려는 해법으로 떠오른 ‘자체 발전’이, 지역 대기질과 기후에 대한 통제력을 낮추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 쟁점이다.
데이터센터 섬전력 발전소는 앞서 보도한 보수당 ‘저렴한 전력’ 보고서의 허점 10가지…팩트체크가 드러낸 전기요금·기후정책 논쟁의 맹점, 중국 재생에너지 출력제한, 상반기 360TWh 버렸다…멕시코 1년 전력 규모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전력은 스스로’ 요구가 커진 배경과 역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을 전제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최근 수년간 전력 수요가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미국 전력산업은 대규모 데이터센터 증설로 오랜만에 ‘급격한 부하 증가’를 마주했고, 그 부담이 주거용과 소상공인 요금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전력망에 접속하려는 데이터센터가 늘어나자 지역 사회에서는 송전망 확충, 발전소 증설, 요금 상승, 대기오염 악화를 한 묶음으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이런 맥락에서 ‘데이터센터는 자기 전력을 직접 마련하라’는 구호가 빠르게 대중화됐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조시 셔피로는 자체 전력을 가져오고 개발하며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데이터센터에 대해 유예 조치를 발표했다고 밝혔고, 텍사스 주지사 그레그 애벗은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연결을 막는 조치를 취했다. 규제 당국, 소비자 단체, 이해관계자들이 이 방향을 거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데이터센터 섬전력 발전소로 비용을 사업자가 떠안게 하면 전력요금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다.
문제는 역설이다. 전력망에 연결되지 않은 ‘섬전력’이 늘어날수록, 기존 전력시장과 공공 규제의 감시 틀에서 벗어난 대규모 화석연료 발전이 지역에 들어설 수 있다. 전력망에 붙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경적 안전장치가 약해지면, ‘요금 방어’가 ‘오염 감시 약화’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때 논쟁의 중심에 선 것이 데이터센터 섬전력 발전소와 Clean Air Act의 적용 범위다.
EPA 지침이 바꾼 것: 산성비 프로그램 적용 제외
EPA는 최근 지침에서 Clean Air Act의 산성비 프로그램이 “더 큰 전력망에 어떤 방식으로도 연결되지 않은” 발전시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 산성비 프로그램은 1990년 Clean Air Act 개정으로 도입돼 대형 발전소의 이산화황과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제도다. 텍사스대 에너지 법정치학 교수 데이비드 스펜스는 초기에는 공공에 판매되는 전기를 주로 생산하는 유틸리티 발전소에만 적용됐고, 오래된 석탄발전이 주요 대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다른 규제를 이미 적용받던 신규 가스발전 등도 일정 시점부터 포함됐다.
이번 지침으로 가장 크게 거론되는 변화는 ‘감시 수단’이다. 에모리대 로스쿨 환경법 프로그램의 민디 골드스타인은 산성비 프로그램 준수 요건이 연속배출모니터링 같은 상시 측정과 보고를 요구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 의무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규제기관이 실제 배출 프로필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된다. 황과 질소 계열 오염물질이 1990년대 이후 크게 줄어든 배경에도 이런 감시 체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EPA는 지침이 “데이터센터를 위한 섬전력 발전시설의 개발과 운영 기회를 확대”해 입지와 속도 면에서 유연성을 높이고, 전력망 부담을 줄이면서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Grist가 전한 전문가들의 우려는 다른 지점에 있다. 주 정부가 현장에서 배출을 추적하는 데 유용했던 도구가 약해질 수 있고, 그 공백을 메우려면 지방 규제기관의 역량과 정치적 의지가 더 요구된다는 것이다.
허가의 ‘도미노’와 공공 참여 축소 논란
Clean Air Act 체계에서 발전소는 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의 허가와 규제를 동시에 적용받는다. 산성비 프로그램에서 제외되면 그만큼 하나의 규제 고리가 풀린다. EPA와 일부 전문가는 애초에 섬전력 발전소는 산성비 프로그램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는 해석을 내놓지만, 현장에서는 ‘적용 제외를 명시적으로 확인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업자에게 신호로 작동할 수 있다.
더 주목되는 쟁점은 EPA가 별도로 제안한 규정 개정 방향이다. 새 오염원 가운데 ‘경미’로 분류되는 시설은 허가 발급 전 공고와 의견수렴 절차를 면제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EPA는 배출 기준을 바꾸거나 환경 보호를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부담을 줄여 허가를 신속하게 하려는 취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허가 과정에서 주민이 정보를 얻고 의견을 제시할 통로가 줄어들면, 데이터센터 섬전력 발전소처럼 특정 지역에 집중될 수 있는 시설의 사회적 갈등은 더 증폭될 수 있다.
골드스타인은 이런 변화들을 데이터센터 입지와 이에 맞물린 발전설비 입지를 ‘차례로 정리하는 도미노’에 비유했다. 규제의 문턱을 조금씩 낮추는 방식이 누적되면, 결국 부담은 주 정부와 지역사회가 떠안게 된다는 뜻이다. 산성비 프로그램의 연속배출모니터링처럼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감시 체계가 약해질수록, 지역마다 다른 규제 역량과 정치 지형이 대기질의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대형 가스발전 프로젝트와 ‘섬전력’ 확산
데이터센터 수요가 촉발한 전력 증설은 규모 면에서도 이례적이다. 스펜스는 풍력과 태양광의 경제성이 높아지면서 “가스발전을 거의 짓지 않던 시기”가 있었지만, 24시간 전력을 확보하려는 데이터센터의 수요와 자본이 가스발전 건설을 다시 밀어 올렸다고 말했다.
Grist 보도에 따르면 OpenAI는 오하이오의 데이터센터 부지에 9.2기가와트 규모의 천연가스 발전소 계획을 발표했고, 텍사스에서는 Amazon이 7.65기가와트, Nexus가 6기가와트 발전소를 제안했다. EPA 지침이 언급한 사례로는 특정 데이터센터를 위한 500메가와트 가스발전 제안이 거론됐다. 조지아에서는 마이크로그리드 개발사 VoltaGrid가 Serverfarm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90메가와트 설비 허가를 신청했다.
이런 설비들이 모두 전력망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데이터센터 섬전력 발전소’로 분류될 여지가 생긴다. 전력망 연계 발전소는 시장 규칙과 계통 운영, 공개 데이터, 광범위한 규제의 영향을 받는 반면, 섬전력은 단일 수요처를 위한 전용 설비로 설계돼 감시와 정보 공개의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즉 데이터센터 전력난이 ‘분산형 전용 화석연료 발전’의 부활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