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위기 속 풍력·태양광 발전이 영국 가스 수입 59억파운드 줄였다

중동 호르무즈 위기로 가스 가격이 2022년 에너지 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는 사이, 영국에서는 풍력·태양광 발전이 예상 밖의 ‘완충 장치’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력 생산에서 풍력·태양광 발전이 기록적인 비중을 차지하면서, 영국이 추가로 사와야 했을 가스 수입 비용이 수십억파운드 규모로 줄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추진해온 전력 부문의 탈탄소가, 전쟁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촉발한 연료 가격 급등 국면에서 가계와 산업의 비용 부담을 낮추는 ‘경제적 안전판’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동시에 가스 가격이 난방비에 더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구조 속에서, 열 부문 전환과 효율 개선이 함께 진행되지 않으면 에너지 취약계층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남긴다.

풍력·태양광 발전은 앞서 보도한 뉴잉글랜드 산불 대응, ‘연방 인력 감축’ 앞에서 흔들리나…와일드랜드 소방관들의 burning questions, 유엔 총회에서 충돌한 기후 비전: 브라질의 에너지 전환 vs 미국의 거부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Carbon Brief 분석: 풍력·태양광 발전이 가스 수입 59억파운드 대체

기후 전문 매체 Carbon Brief는 2026년 호르무즈 위기 국면에서 영국의 풍력·태양광 발전이 가스 수입 의존을 크게 낮췄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본격화된 2026년 2월 이후, 영국이 추가로 부담했을 가스 수입 비용을 합산하면 59억파운드에 이른다는 추정치가 제시됐다.

핵심은 같은 기간 전력 부문에서 풍력·태양광 발전이 빠르게 늘고, 가스 발전이 줄었다는 점이다. Carbon Brief에 따르면 2026년 들어 풍력·태양광 발전량은 전년 대비 14% 증가했고, 가스 발전은 전년 대비 약 10% 감소했다. 2026년 누적 기준 전력 수요에서 풍력·태양광 발전이 차지한 비중은 41%로 기록됐고, 가스는 25%로 집계됐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발전 믹스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가스 가격이 급등하는 시기에 가스 발전을 덜 돌릴수록, 그만큼 LNG 수입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 경쟁에 덜 노출된다. Carbon Brief는 풍력·태양광 발전이 없었다면 영국은 LNG 운반선 100회 이상에 해당하는 추가 물량을 확보해야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에너지 안보와 전력요금 안정성의 관점에서 풍력·태양광 발전이 ‘가격 충격 흡수’ 역할을 한 셈이다.

가스 가격 2019년 대비 약 4배…전력요금과 난방비의 엇갈린 경로

이번 분석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가스 가격 급등이 있다. Carbon Brief는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공급 차질로 높아진 가스 가격이, 2026년 들어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위기까지 겹치며 다시 치솟았다고 짚었다.

영국 도매 가스 가격은 2023년부터 2026년 초까지 평균 1서름당 90펜스 수준으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인 2019년 가격의 약 3배였다. 중동 전쟁이 격화된 2026년 3월 이후에는 평균 134펜스로 올라 2019년 대비 약 4배로 평가됐다. 2026년 9월 들어서는 평균 189펜스까지 치솟아 2022년 글로벌 에너지 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가격 상승의 요인으로는 겨울 접근에 따른 난방 수요 증가, 위기 장기화 전망, 유럽 가스 재고 부족 등이 거론된다. 재고가 낮을수록 유럽은 아시아와 LNG 화물을 놓고 경쟁해야 하고, 이는 가격을 더 밀어 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가스 가격 급등은 영국 가계에 서로 다른 경로로 전달되고 있다. Nesta 분석에 따르면 2026년 10월 1일부터 전형적인 가구의 가스 요금은 4월 대비 33% 상승해 연간 약 200파운드가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전기요금 상승폭은 4%에 그칠 것으로 제시됐다. 전력 시장에서는 풍력·태양광 발전 등 청정 전원의 비중 확대가 가스 가격 연동 효과를 일부 약화시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Nesta의 앤드루 시슨스는 전기요금과 가스 가격의 연결고리가 이미 약해지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다만 난방 연료로서의 가스 의존도가 큰 구조 자체는 여전하다. 전력 부문에서 풍력·태양광 발전이 가스 가격 충격을 줄였더라도, 난방비 부담은 저소득층과 취약가구에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의 성과가 체감되려면, 전기 생산뿐 아니라 건물 단열, 효율, 난방 전환 같은 수요 측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풍력·태양광 발전 확대가 던지는 정책 메시지: ‘노출’ 줄이기

정치권에서도 ‘국제 화석연료 시장 노출’이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 Carbon Brief가 전한 바에 따르면 노동당 에너지 장관 미아타 판불레는 에너지 비용이 높은 이유로 영국이 글로벌 화석연료 시장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앤디 번햄 총리도 청정에너지 확대가 가스 가격 급등의 전기요금 충격을 완화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국내 전력 가격이 국제 가스 시장에 의해 좌우되는 연결을 더 빠르게 끊도록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풍력·태양광 발전의 역할을 ‘기후 정책’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 안정’과 ‘안보’의 언어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호르무즈 위기처럼 특정 해협과 항로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곧바로 에너지 가격과 물가에 영향을 주는 구조에서는, 발전 연료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이 단기 비용 변동성까지 줄일 수 있다.

동시에 전력 가격 형성 방식이 가스 가격에 끌려가는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논쟁도 커진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발전 단가가 낮은 전원이 늘어나더라도 도매 전기요금이 가스 가격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 영국 정부가 ‘연결 고리 끊기’를 언급한 것은, 단순히 설비를 늘리는 것을 넘어 시장 설계 개편과 장기계약, 저장 기술, 송전망 투자까지 포괄하는 과제를 시사한다.

유럽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비용 압박은 더 선명해진다. 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위기 이후 화석연료 수입에 추가로 1000억유로를 더 지불해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 연료비 상승은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 특히 가혹하다는 별도 분석도 언급됐다. 이런 상황에서 풍력·태양광 발전처럼 연료를 수입하지 않는 전원 확대는 무역수지와 물가 측면에서도 파급력이 크다.

운송과 식품 물가까지 번지는 연료비 충격…지속가능한 소비 전환의 압력

화석연료 가격 급등은 전기와 난방을 넘어 운송, 식품 가격, 소비 패턴에도 연쇄적으로 작용한다. Carbon Brief는 영국에서 디젤 가격이 1리터당 약 2파운드로 기록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디젤 가격은 물류비를 통해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가격에 전가되기 쉽고, 특히 냉장 유통과 장거리 운송 의존도가 높은 식품 공급망에서는 충격이 커진다.

이 지점에서 풍력·태양광 발전 확대는 전력요금 안정과 더불어 전기화의 경제성을 좌우하는 변수로 이어진다. Carbon Brief의 다른 분석을 인용하면 전기차는 운행 비용이 최대 9배까지 더 저렴할 수 있다고 소개됐다. 전기차, 전기 버스, 전기 화물차로의 전환은 배출 저감뿐 아니라 유가 급등기에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전기화가 확대될수록 전력망 투자와 저장 설비, 수요 관리 같은 시스템 비용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식품 산업 측면에서도 에너지 비용은 축산과 작물 재배, 가공, 포장, 냉장 유통 전 과정의 원가를 끌어올린다. 특히 사료 생산과 비료 제조는 에너지 집약도가 높아 가스 가격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구조는 장기적으로 식품 기업과 소비자에게 공급망 다변화, 지역 조달, 계절 식단, 식물성 대체식품 확대 같은 선택지를 검토하게 만든다. 동물복지와 탄소 배출을 동시에 고려하는 소비 트렌드가 커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충격은 ‘지속가능한 식생활’ 논의를 생활비 문제와 더 강하게 결합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Carbon Brief 분석은 풍력·태양광 발전이 단지 전력의 한 축이 아니라,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국가 경제와 가계 지출을 방어하는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전력 부문에서의 성과가 난방과 운송, 식품 물가 안정으로 이어지려면, 전기화 확대와 효율 개선, 사회적 보호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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