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불규칙한 강수, 기록적 폭염이 겹치면서 농민에게 농사는 더 이상 계절의 반복이 아니라 생존의 도박이 되고 있다. 그 충격은 생산량 감소를 넘어, 무엇을 언제 심고 수확할지라는 가장 기본의 의사결정부터 흔든다. Climate Week NYC 2026 무대에서 나온 메시지는 명확했다. 식품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말하려면 먼저 ‘농민 우선’을 현실의 계약과 투자, 노동조건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Food Tank가 Whole Foods Market과 함께 진행한 대담에서 패널들은 기후적 압박과 비용 상승, 연구투자 불확실성, 분쟁으로 인한 식량불안이 동시에 농가의 위험을 키운다고 짚었다. 농민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전환하려 해도 판로가 없으면 실행이 막히고, 소비자가 지속가능성을 원해도 유통 구조가 따라주지 않으면 공급은 늘지 않는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이번 논의의 핵심이었다.
농민 우선은 앞서 보도한 미국 우선주의가 바꾼 Feed the Future Innovation Labs, 글로벌 기아 연구의 축이 흔들린다, 탄소 저장 대두 개발 경쟁, 깊은 뿌리가 가뭄과 기후 목표를 동시에 겨냥한다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기후위기와 비용 상승이 만든 ‘농사 불가능’의 체감
대담에 참여한 미국 청년 농민 조직 National Young Farmers Coalition의 미셸 휴스는 기후 충격이 이미 전국의 젊은 농민에게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는지 “과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휴스는 일부 농민에게 농사가 “어렵다”를 넘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감각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지 농업의 고충을 토로하는 수준이 아니라, 식량안보의 기반이 되는 생산 현장이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행사에서 언급된 배경에는 농업 연구에 대한 공공투자 불확실성도 포함됐다. 기후 적응 품종, 토양 관리, 병해충 대응 같은 기술과 지식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재정과 정책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농가는 다음 시즌뿐 아니라 다음 5년을 내다보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여기에 국제 분쟁이 초래하는 식량위기와 이주, 생활물가 상승이 더해지며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압박을 받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 우선’은 슬로건이 아니라 기후 대응의 실행 조건으로 제시된다. 농민이 위험을 홀로 떠안는 모델에서는 토양 건강, 유기 전환, 재생농업 같은 장기 프로젝트가 지속되기 어렵고, 그 부담은 다시 가격과 공급 불안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농민은 농사만 짓지 않는다: 다중 역할이 만든 숨은 비용
콜로라도 산루이스밸리의 가족농이자 Jones Farms Organics의 세라 존스는 농민의 일이 생산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물학자, 환경관리자, 정비사, 엔지니어를 겸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케팅과 영업, 소셜미디어, 유통, 브랜드 디자인, 고객 서비스까지 끝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 발언은 지속가능성을 요구받는 농가의 현실을 압축한다.
탄소저감이나 토양개선 같은 목표가 농장에 내려오면, 현장은 기록과 인증, 교육, 장비 투자, 새로운 유통처 발굴까지 떠안는다. 소비자는 ‘친환경’ 라벨을 원하지만, 그 라벨을 얻기 위한 행정과 비용은 농가의 무급 노동으로 흡수되기 쉽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이 도덕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계의 리스크가 된다.
‘농민 우선’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환 비용을 농가의 의지로만 설명하면 청년 농민 유입은 줄고, 가족농은 유지되기 어렵다. 회복탄력성은 기술 이전이나 캠페인만으로 오지 않으며, 농민이 과중한 다중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격과 계약, 금융, 노동의 조건이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됐다.
농업은 위험하고 자본집약적이다: 생계와 안전의 사각지대
Lundberg Family Farms의 브리타 룬드베리는 농업이 “힘들고, 위험하며, 자본집약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농무부 자료를 인용해 미국 농민의 84퍼센트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두 번째 일자리를 가진다고 전했다. 이 수치는 ‘농민 우선’이 단순한 보조금 논쟁이 아니라 노동시장과 지역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Dirtbaby Farm의 공동 디렉터 아말리아 콜론 나바는 농장 소유주든 농업 노동자든 스스로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기 어렵다는 “큰 격차”를 지적했다. 그는 많은 농민이 채소를 팔아도 이익을 내기 어려운 현실을 말하며, 식품시스템이 노예제와 착취된 노동의 역사 위에 세워졌고 그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음식은 인권”이라는 언급은 가격과 효율의 언어로만 농업을 다뤄온 정책과 시장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Good Ground 공동 설립자이자 Brooklyn Supported Agriculture 디렉터인 더본 잭슨 페레즈는 기후 회복탄력성 논의가 농민의 기본권과 노동조건을 제외한 채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이 가장 위험한 직업군 중 하나인데도 의료 접근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속가능한 생산을 확대하려면, 농업의 안전과 건강권이 ‘부수적 복지’가 아니라 핵심 인프라로 인정돼야 한다는 의미다. ‘농민 우선’은 곧 생계, 안전, 의료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는 일로 확장된다.
유기 전환을 가로막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시장’이다
세라 존스는 많은 농가가 유기 생산으로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 변화를 재정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구매자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보다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시장만 주어지면 유기농으로 전환할 농민 10명을 들 수 있다고 표현했다. 기후 대응과 환경 목표는 종종 생산자 행동의 문제로 환원되지만, 현장에서는 수요와 계약이 전환의 관문이 된다.
이 지점에서 소매 유통의 역할이 전면에 등장한다. Whole Foods Market의 소냐 가프시 오블리스크는 소매업이 할 수 있는 “1순위”가 시장과 수요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급은 수요 없이 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식품시스템을 규모 있게 바꾸려면 공급만이 아니라 수요를 바꿔야 하며 소비자가 지갑으로 투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농민 우선’ 관점에서 이 발언은 두 방향으로 읽힌다. 첫째, 소비자 트렌드가 지속가능성으로 이동하더라도 그 신호가 농가까지 전달되는 통로가 필요하다. 둘째, 소비자에게만 책임을 넘기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친환경 프리미엄을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선택이 곧바로 개인의 윤리 시험이 되면 시장은 분절된다. 따라서 수요 창출은 캠페인만이 아니라 가격 구조, 유통 계약, 접근성 개선과 결합해야 한다는 함의가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