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이제 ‘식량 생산 능력’까지 요구한다
미국 국방부가 미래 전쟁 수행 방식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
최근 미 육군은 캘리포니아 생명공학 스타트업 Biosphere에 약 900만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핵심 목표는 전투 지역에서 병사들이 직접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이동형 바이오리액터 개발이다.
표면적으로는 대체 단백질 기술 투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군수 체계와 공급망 전략 전반을 재설계하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미국 국방부 DEVCOM Soldier Center는 이번 사업 목적을 “보급이 제한된 환경에서 자율적 영양 생산 역량 확보”라고 설명했다.

현대 전쟁에서 가장 취약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공급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군 내부에서는 “보급망이 공격받는 시대(contested logistics)”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다. 드론과 장거리 미사일 기술 발전으로 후방 보급기지조차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면서, 군은 외부 공급 없이 장기간 작전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
Biosphere 프로젝트는 이 문제의 해답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이 회사가 개발하는 기술은 ‘가스 발효(gas fermentation)’ 기반 단백질 생산 시스템이다. 미생물에게 이산화탄소, 수소, 산소, 물, 전기를 공급해 단백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공기와 전기로 만드는 식량”에 가깝다.
기존 식량 생산은 농업과 축산 기반 공급망 위에 존재했다. 반면 가스 발효는 전기와 물, 가스만 있으면 현장 생산이 가능하다. 미군이 구상하는 것은 단순한 미래 식품이 아니다. 식량 운송 자체를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보급망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시스템이다.
미 육군 계획에 따르면 초기 목표는 병사 18명에게 하루 2,800칼로리를 현장에서 공급하는 것이다. 이후 최대 250명 규모까지 확장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군용 식품 개발이 아니라 “현장 제조형 군수 체계” 개념에 가깝다.


미 국방부가 주목한 것은 ‘단백질’보다 ‘생산 방식’이었다
Biosphere가 업계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대체 단백질 기업이어서가 아니다. 핵심은 바이오리액터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설계했다는 점이다.
현재 산업용 바이오리액터는 사실상 1940년대 페니실린 생산 기술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 시스템은 거대한 스테인리스 탱크와 복잡한 배관 구조를 사용하며, 고온 증기 멸균 방식에 의존한다. 문제는 비용과 규모다. 수백 개 밸브와 배관, 대규모 스팀 설비가 필요해 초기 투자 비용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바이오 제조 산업은 오랫동안 “기술은 가능하지만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Biosphere는 이 구조를 자외선(UV) 멸균 기술로 단순화했다. 회사는 UV 기반 sterilise-in-place 시스템을 통해 기존 대비 자재 비용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멸균 속도는 6배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배관과 밸브 수를 크게 줄여 이동형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쉽게 말하면 기존 바이오 공장을 군용 장비 수준 크기로 줄이려는 시도다.
미 국방부가 여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명확하다.
군이 필요한 것은 “맛있는 미래 음식”이 아니라, 전장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한 제조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Biosphere 공동창업자 Arye Lipman은 이번 플랫폼이 장기적으로 연료, 화학물질, 특수 소재 생산까지 확장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 국방부는 현재 바이오 제조를 6대 핵심 전략 기술 가운데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식량 문제를 넘어선다.
미래 전진기지가 단순한 주둔지가 아니라, 스스로 연료와 식량,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분산형 제조 허브”로 바뀔 가능성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도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미국 안보 커뮤니티는 합성생물학과 바이오 제조를 반도체 이후 전략 산업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와 농무부는 최근 식량과 농업을 국가안보 우선순위로 지정하는 협약까지 체결했다.
결국 식량은 더 이상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국가 안보 자산으로 재정의되고 있는 셈이다.

‘공기 단백질’은 군용 식량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미군은 이미 전투식량 체계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대표 사례가 MRE(Meals Ready-to-Eat) 개편이다.
기존 MRE는 “오래가지만 맛없는 식량”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최근 미군은 저장성뿐 아니라 경량화, 영양 밀도, 병사 피로 감소까지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미 육군은 2027년부터 비건 MRE 옵션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변화와는 거리가 있다. 군이 중요하게 보는 것은 효율성이다. 식물성 및 발효 기반 단백질은 상대적으로 저장성과 생산 효율이 높고, 장기적으로는 공급망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미군 차세대 전투식량인 CCAR(Close Combat Assault Ration)은 기존 식량보다 부피를 39%, 무게를 17% 줄였다. 미래 전장이 기동성과 분산형 작전 중심으로 바뀌면서 식량 역시 더 가볍고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물론 현실적 한계도 존재한다. 우선 맛과 기호성 문제가 남아 있다. 군 연구에서도 병사들의 식량 만족도는 전투 사기와 직접 연결되는 요소로 평가된다. 또한 가스 발효 시스템은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극한 환경에서 바이오리액터가 실제로 안정 작동할 수 있는지도 검증이 필요하다.
경제성 역시 과제다. 현재 대체 단백질 산업은 여전히 기존 축산보다 생산 비용이 높다. 대규모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미 국방부가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래 전쟁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전장은 드론 중심 작전, 분산형 전투, 불안정한 공급망, 고립된 전진 기지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현장 생산 능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생존 역량이 된다.
과거 군대가 후방에 탄약 공장을 세웠다면, 미래 군대는 전선 가까이에 식량 공장을 두려 하고 있다.
Biosphere 사례는 대체 단백질 산업 역시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과거 이 산업은 탄소 감축과 동물복지 중심 서사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 미국 국방부가 주목하는 핵심은 공급망 복원력, 군수 효율, 전략 제조 역량이다.
결국 “공기 단백질”은 더 이상 실리콘밸리식 미래 식품 아이디어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