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크릴, 생태계의 기반종

남극 해양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생물, 남극 크릴(Euphausia superba)은 그 수많은 포식자들의 먹이망 정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서남극 반도 일대의 고래, 펭귄, 바다표범들은 이 미세한 갑각류를 연중 의존하며 생존의 균형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제, 이 균형이 무너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15년간 유지되어온 공간 분산 어획 조치, 즉 CM 51‑07의 종료는 단순한 규정 만료가 아닌, 남극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는 신호탄이다.

이 조치는 해역을 네 개 구역으로 나눠 크릴 어획이 한 곳에 몰리지 않도록 설정된 안전장치였다. 포식자들은 특정 해역에서 번식과 수유, 사냥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는데, 크릴 어획이 이들과 겹치면 먹이 경쟁이 심화된다. 기존에는 이런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획량을 지역별로 분산시키는 규제가 있었다. 하지만 2024년부터 해당 조치가 공식적으로 만료되면서, 어업 선박들은 더 이상 공간적 제약 없이 크릴을 잡을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2025년 8월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크릴 어획량이 기록되며 어업이 조기에 종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규제는 지켜졌으나, 정작 그 규제가 사라진 탓에 어획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포식자들의 주된 먹이터가 빠르게 고갈된 것이다. 이는 ‘법적 문제 없음’이라는 껍데기 속에 감춰진 구조적 붕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크릴 어획이 초래한 생태계 교란

생물학자들은 크릴의 생물량 감소뿐 아니라 그 분포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남극 해역의 해빙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크릴은 이 해빙 가장자리에 서식하며 먹이활동을 한다. 즉, 해빙이 줄면 크릴의 번식률과 생존률도 급격히 하락한다. 여기에 어업이 겹쳐지면 남극 생태계의 주춧돌이 되는 종의 생물량이 복합적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턱끈펭귄은 최근 수십 년간 30% 가까이 개체 수가 줄었고, 혹등고래는 크릴이 부족한 해에 번식률이 저하되는 경향을 보인다. 물개류 또한 번식 성공률과 새끼 생존률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의 중심에는 ‘먹이 부족’이라는 공통된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러한 영향이 점진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간 분산 조치가 폐기된 지금, 어업 선박은 고밀도 크릴 군집이 모이는 지역에 집중적으로 조업을 펼치게 된다. 문제는 그 지역이 바로 포식자들의 핵심 서식지라는 데 있다. 선박과 고래가 같은 해역에서 먹이를 두고 경쟁하는 풍경은 이제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일부 고래는 어업망에 얽혀 부상을 입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어획을 넘어 생물다양성 위협으로 확장되고 있다.

과학계는 ‘한도 내 어획’이라는 제도적 안도감이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파괴적 효과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분포가 일정하지 않고, 군집성이 강한 크릴 특성상 한 지역의 고갈은 해당 지역 포식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생존 위기로 이어진다. 생물의 평균 밀도가 유지되더라도, 실제 필요한 시점과 장소에서의 가용성이 떨어지면 번식 실패, 개체군 감소, 그리고 먹이망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생태계 중심 관리로의 복귀

지금이야말로 남극해양생물자원 보존위원회(CCAMLR)가 창립 이념으로 회귀해야 할 때다. 어업을 통한 수익 증대와 생태계 보전은 대립적인 목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장기적으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지속 가능한 어획이 가능하려면, 그 기반 생물인 크릴의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생태계 전반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공간 분산 어획의 복원 또는 새로운 방식의 공간 규제다.

각국은 남극 해역에 대한 접근 권리를 떠나, 생물다양성과 기후 안정성의 공동 책임을 지고 있다. 남극은 더 이상 고립된 대륙이 아니다. 해양 생태계 붕괴는 전지구적 탄소 순환, 대기 조절, 어획 자원에도 파급효과를 미친다. 이를 감안할 때, ‘보전 없는 어업’은 결국 ‘어획 없는 미래’를 자초하는 길이 된다.

다가오는 CCAMLR 총회는 단순한 기술적 규제 협의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국제사회가 생태계 기반 관리에 다시 한번 믿음을 보일 수 있는 시험대다. 더 늦기 전에, 생태계 건강성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크릴의 생존은 고래의 생존이고, 고래의 생존은 결국 인간의 미래와도 맞닿아 있다. 지금 선택해야 할 것은 톤수가 아닌, 생태계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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