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법적 패배 후 전기차 충전소 예산 50억불 프로그램 재가동

전기차 인프라 확대의 필요성과 정치적 역풍

트럼프 행정부는 오랜 시간 동안 전기차(EV) 관련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다. 특히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마련했던 청정 에너지 및 친환경 교통 수단 확산 정책은 그들의 눈에 비효율적 보조금 정책이자, 불필요한 정부 개입으로 비춰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21년 초당적 인프라 법안으로 신설된 ‘NEVI(National Electric Vehicle Infrastructure)’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전역에 고속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 EV 운전자들의 주행 불안, 이른바 ‘충전 불안’을 해소하고자 만들어졌으며, 총 50억 달러(한화 약 6조 7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2025년 초,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이후 해당 프로그램은 갑작스럽게 정지되었다. 교통부는 NEVI와 관련한 기존의 지침을 전면 철회하고, 각 주정부가 계획 중이던 충전소 설치 사업들을 중단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전국 50개 주 중 절반 가까운 지역에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수천 개의 고용 기회를 없애고 민간 기업의 투자 유치 계획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교통부 장관 션 더피는 당시 “우리는 세금 낭비를 방지해야 하며, 과도한 친환경 예산 집행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트럼프 행정부는 명확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는 결국 수많은 주정부와 민간 기업, 환경단체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적으로는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갈등, 행정부와 입법부의 충돌, 그리고 연방과 주정부 사이의 권한 다툼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문제의 성격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 차원을 넘어섰다. 더불어, 전기차 산업이 단순한 교통 수단의 전환이 아닌, 기후 변화 대응, 산업 구조 전환, 기술 자립의 핵심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NEVI 프로그램의 정지는 미국의 미래 경쟁력 자체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법정에서 뒤집힌 정책…주정부와 시민단체의 연합

NEVI 프로그램 중단 이후, 워싱턴 D.C.와 함께 20개 주정부가 연방 교통부를 상대로 공동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에는 캘리포니아, 뉴욕, 오리건, 메릴랜드, 뉴저지 등 친환경 정책에 적극적인 주들이 포함되었으며, 시애라 클럽(Sierra Club), NRDC(자연자원보호위원회), Earthjustice 등 주요 환경 시민단체들도 공동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의회에서 정당하게 승인된 예산을 불법적으로 집행 중단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논란이 된 부분은 ‘Justice40’이라 불리는 조항의 삭제였다. 이 조항은 전체 연방 자금 중 최소 40%를 소외되고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에 우선적으로 배정하도록 명시한 것으로, 단순한 인프라 구축이 아니라 환경 정의와 사회 형평성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원칙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조항을 “비효율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족쇄”로 간주하며 프로그램의 목적을 ‘빠르고 저렴한 설치’로 재정의했다.

그러나 법원은 행정부의 이 같은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2025년 6월, 연방 법원은 NEVI 프로그램의 자금 중 8.75억 달러를 해당 주들에게 즉시 배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의회의 예산 배정 권한은 행정부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고유 권한이며, 교통부의 지침 철회는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진 행정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이 판결 이후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뉴욕, 워싱턴, 콜로라도 등 여러 주는 즉각 충전소 프로젝트를 재개했고, 일부는 이미 장비 설치를 위한 계약을 새롭게 체결했다. 하지만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주들 또는 여전히 지침 재적용을 기다리고 있는 주들은 여전히 자금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환경 단체들은 여전히 행정부의 새로운 지침에 대해 “형식적인 굴복일 뿐,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며 강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시애라 클럽의 청정교통 캠페인 책임자인 캐서린 가르시아는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한 새로운 지침은 언뜻 온건해 보이지만, 실상은 여전히 billions 단위의 자금을 불법적으로 유보하고 있으며, Justice40의 완전한 복구 없이는 진정한 회복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미래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NEVI 프로그램 재개 조치는 명백히 법적 판결에 의한 ‘후퇴’로 볼 수 있다. 이는 동시에 향후 청정 에너지와 기후 정책에 있어 정책 연속성과 법적 안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정책이 정권에 따라 극단적으로 흔들릴 경우, 민간 투자자는 물론 주정부와 시민사회까지 혼란에 빠지며,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의 산업 경쟁력과 글로벌 기후 대응 역량이 약화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과거의 갈등이 아니라 향후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정상화하고, 전기차 인프라를 미국 전역으로 확산시킬 것인가다. 정책의 초점은 단순한 ‘충전기 개수’가 아니라 접근성, 형평성, 신뢰성, 유지보수 가능성, 그리고 지역사회 참여로 확장되어야 한다. 농촌 지역이나 흑인·히스패닉 커뮤니티, 저소득층 거주 지역 등은 상업성이 낮아 민간 기업이 외면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들 지역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약 206,000개의 충전 포트가 설치되어 있으나, 대부분은 특정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500,000기 설치를 목표로 설정했지만, NEVI 프로그램의 좌초와 지연으로 인해 이 계획은 현실성과 시급성 모두에서 위협받고 있다.

산업계도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전기차 제조사, 충전기 공급업체, 광물 채굴 기업, 배터리 기술 기업 등이 소속된 무배출교통협회(ZETA)는 “이번 정책 혼선은 기술의 발전과 인프라 구축의 속도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전기차 전환을 국가적 혁신이 아닌 정쟁 도구로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텍사스, 오하이오, 플로리다 등 공화당 주도 주들조차도 대규모 예산을 확보하고 충전소를 설치 중이라는 점은 전기차 인프라가 이념을 넘어서는 국민적 과제임을 방증한다. 텍사스는 전체 NEVI 예산 중 $4.08억 달러를 배정받아 전국 최대 수혜 주가 될 전망이며, 오하이오는 미국 최초의 NEVI 자금 기반 충전소를 가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향후 NEVI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자금 재개방에 그치지 않고, 정책 일관성, 지방정부와의 협업, 지속가능한 민관 파트너십,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신뢰와 수요를 반영하는 시스템 설계에 달려 있다.

결국, 전기차 충전소는 단지 기술적 기반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이 생태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리더십, 법적 정당성, 그리고 사회적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More from this stream

Recome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