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원주민의 숲이 사라지고 있다

2022년 10월,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 보르네오 섬. 이 지역의 이반(Iban) 원주민 공동체를 이끄는 제프리 낭(Jeffery Nang) 추장은 일상적인 공동체 회의에 참석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말레이시아 정부 산하 사라왁 산림부가 그와 그의 마을 주민 60여 명에게 30일 내에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숲을 떠나야 한다는 퇴거 명령서를 건넨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들이 ‘보호림’ 안에서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추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보다 몇 달 전, 자신을 찾아온 벌목회사 관계자가 ‘이 숲의 나무가 필요하다’며 목재 채취를 암시했던 사실을 말이다. 방문자는 제드티(Zedtee Sdn Bhd)라는 기업의 소속이었고, 이는 말레이시아 내 최대 벌목업체 중 하나인 신양 그룹(Shin Yang Group)의 자회사다. 신양은 한국, 일본, 미국 등으로 고급 목재와 연료용 펠릿을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제프리 낭은 어떤 서면 합의도 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공동체는 그 이후로도 정부와 기업의 압박에 맞서며 3년 가까이 땅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이 숲을 단순한 삶의 공간이 아니라, 조상의 무덤이 있고, 신성한 폭포가 있는 ‘영혼의 땅’이라 여긴다. 이 땅을 떠나는 것은 단지 주거지를 잃는 것이 아닌, 역사와 문화를 잃는 일이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루마 제프리(Rumah Jeffery) 공동체에 대한 퇴거 조치는 국제법상 원주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자발적 동의 없이 자원을 개발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정부는 여전히 조치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벌목은 합법, 원주민 권리는 사각지대

휴먼라이츠워치의 수석 연구원 루시아나 텔레스 차베스(Luciana Téllez Chávez)는 “사라왁 주의 법체계는 원주민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에 따르면, 사라왁에서는 원주민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식민지 시절 찍힌 항공 사진을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이 항공 사진이 정부에 의해 기밀 자료로 분류돼 있다는 점이다.

차베스는 “정보 접근 자체가 차단된 상황에서, 공동체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현 시스템의 모순을 꼬집는다. 그녀는 현지 대학 연구진과 협력해 그 항공사진 데이터를 확보했고, 루마 제프리 공동체가 실제로 수십 년 동안 해당 지역에 거주해왔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제드티는 주민의 동의 없이 벌목을 강행했으며, 글로벌포리스트워치(Global Forest Watch)와 메릴랜드 대학교의 분석에 따르면, 약 8헥타르(미식축구장 20개 규모)의 숲이 사라졌다.

사라왁 다약 이반 협회(Sarawak Dayak Iban Association)의 니콜라스 무자(Nicholas Mujah) 사무총장은 “사라왁에는 이와 같은 퇴거 사례가 수백 건 이상 존재한다”며, 이 지역의 관행적인 토지 수탈과 강제 이주가 일상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연관된 국제 문제

이 사안은 결코 말레이시아의 내부 문제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사라왁산 목재는 한국으로도 수출된다. 특히 가구, 바닥재, 건축 자재 등으로 널리 활용된다. 이는 단순한 무역 문제를 넘어, 한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원재료가 인권 침해와 불법 벌목으로부터 자유로운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유럽연합(EU)은 2024년부터 공급망 내에서 발생한 불법 벌목이 확인될 경우, 해당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인권 침해가 개입된 자원을 외면한 채 수입하고 사용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루마 제프리 공동체는 여전히 숲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강에서 고기를 잡고, 숲에서 채소를 재배하며 살아간다.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조상과 연결된 영혼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다.

차베스 연구원은 사라왁 주 정부가 퇴거 명령을 철회하고, 국제사회 기준에 부합하는 원주민 보호 법안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녀는 특히 한국, 일본, 미국 등 목재 수입국들이 더 엄격한 수입 통제와 기업 감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라왁의 법체계는 국제 기준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토지 수탈일 뿐입니다.”

More from this stream

Recomended

도시 나무 회복탄력성, 시골보다 높았다: 위성 데이터가 보여준 뜻밖의 ‘물 관리’ 효과

도시의 나무는 열섬과 오염에 더 취약해 보이지만,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위성 관측을 분석한 연구는 다수 도시에서 도시 나무 회복탄력성이 주변 농촌보다 높다고 밝혔다. 관건은 관수와 스펀지 시티 같은 물 관리다.

영국 농가 설문: 극한 기상 불확실성이 농업 경영을 흔든다…식량 안보 투자 요구 확산

영국 농가 설문에서 74%가 극한 기상 불확실성 때문에 농장 운영이 더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기후 위기, 정책 불확실성, 비용 상승이 겹치며 식량 안보 투자와 지속가능 농업 전환 요구가 커지고 있다.

COP17 자연목표 이행 점검: 2030년 UN 자연목표, ‘가속’ 없이는 늦는다

2026년 10월 아르메니아에서 열리는 COP17에서 각국은 2030년 UN 자연목표 이행 상황을 첫 전 지구적 점검으로 평가한다. UN 보고서는 23개 목표 중 22개에서 진척이 부족하다고 경고했다.

NOAA 보조금 삭감 논란, 기후 회복력 약화 우려 커지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NOAA 보조금이 급감하면서 지역 기반 기후 회복력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Grant Witness 분석과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파급효과를 짚는다.

호주 Safeguard Mechanism 허점 논란…광산 확장으로 배출 규제 피하는 석탄·가스 업계

호주 Climate Council이 Safeguard Mechanism의 규제 차이를 ‘허점’으로 지목했다. 신규 광산보다 완화된 기준이 ‘확장’에 적용되며 2035년까지 연 450만t CO2 추가 배출 우려가 제기된다.

페코스강을 위협하는 산유 폐수: ‘헬스케이프’ 한가운데 흐르는 강의 경고

가뭄으로 수량이 줄어드는 뉴멕시코 페코스강이 퍼미안 분지 유전지대의 산유 폐수와 가스 플레어링, 주입정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규제 변화와 ‘정화 후 방류’ 논쟁이 강 생태계와 지역 식수, 농축산업의 미래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