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에너지부와 플라스틱 산업의 유착 의혹

화학 재활용을 둘러싼 논란과 정부의 투명성 부족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와 플라스틱 산업 로비 단체 간의 이례적인 협력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외신 보도다. 5년 전, DOE는 미국화학위원회(American Chemistry Council, ACC)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 개발과 국내 플라스틱 공급망 강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협력이 ‘화학 재활용(chemical recycling)’ 기술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환경 단체와 과학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화학 재활용은 플라스틱을 고온, 고압 또는 용매를 이용해 원래의 화학 성분으로 분해하는 기술로, 이론적으로는 무한히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실용화가 어렵고 환경 오염 우려가 크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된 이 협약은 본래 취지와 달리 플라스틱 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5년간의 협력, 무엇이 문제인가?

DOE와 ACC 간의 협약은 2020년 2월에 공식 발표되었다. 이 협약에 따르면 DOE는 혁신적인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 개발, 해양 및 수로에서의 플라스틱 회수 기술 연구, 재활용이 용이한 새로운 플라스틱 개발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화학 재활용 기술 연구 지원이다.

화학 재활용, 해결책인가 눈속임인가?

기존 기계적 재활용(mechanical recycling)은 플라스틱을 분쇄하거나 녹여서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오염된 플라스틱이나 혼합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플라스틱 산업계는 화학 재활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다.

그러나 화학 재활용은 실용성이 낮고, 오히려 환경 오염을 증가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 현재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규모 화학 재활용 시설이 거의 없음.
  • 과정에서 다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함.
  • 일부 방식은 플라스틱을 다시 연료로 전환하는데, 이는 사실상 소각과 다름없음.

환경 단체들은 화학 재활용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 논의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플라스틱이 석유와 천연가스를 원료로 생산되기 때문에, 플라스틱 감축은 곧 화석 연료 산업의 축소로 이어진다.

코로나19와 행정부 교체로 지연된 협약?

ACC는 협약이 코로나19 팬데믹과 행정부 교체로 인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ACC 플라스틱 부문 부사장인 로스 아이젠버그(Ross Eisenberg)는 “코로나19로 논의가 중단되었고, 이후 행정부가 교체되면서 협약이 실제로 실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DOE는 이후에도 플라스틱 산업과 협력하여 화학 재활용 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 2019년 DOE는 ‘플라스틱 혁신 챌린지(Plastics Innovation Challenge)’를 시작, 화학 재활용 연구 지원
  • 2020년 플라스틱 산업계와 협약 발표, 화학 재활용을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기회”로 강조
  • 2026년까지 1천만 달러 규모의 화학 재활용 연구 지원 계획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DOE는 화학 재활용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플라스틱 산업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에너지부, 플라스틱 산업과 유착됐다?

환경 단체와 과학자들은 DOE가 플라스틱 산업과 지나치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공의 이익보다는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투명성 부족과 이해충돌 문제

DOE는 화학 재활용 관련 정책을 어떤 방식으로 수립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환경단체나 시민 단체가 그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고 주로 ACC 회원사인 엑손모빌, 셸, 다우케미컬과 같은 이해 당사자들과 논의를 이어왔다는 점. 그리고 자금 지원이나 연구 방향 결정 과정에서 산업계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들어 환경단체들은 DOE가 플라스틱 관련 문제를 산업계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같은 근거는 미국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는 DOE와 ACC 간의 통신기록을 요청했지만 대부분 비공개 처리가 되었다. 그래서 NRDC는 DOE가 관련 정보 공개를 열람하기 위해 2023년 정보공개법(FOIA)소송을 제기했다. 그리하여 DOE는 현재 일부 문서를 공개하고 있으나, 여전히 투명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과학자들: “화학 재활용, 실현 가능성 낮다”

화학 공학자들은 현재 기술로는 화학 재활용이 실용화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제프리 시(Jeffrey Seay) 켄터키대학교 화학공학 교수는 “화학 재활용이 획기적인 기술이라면 좋겠지만, 그런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없다. 현재 기술로는 실용화까지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라고 밝혔으며 니엘 탕리(Neil Tangri) 글로벌 소각 반대 연합(GAIA) 연구·정책 국장은 “DOE 연구는 산업계와 논의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며, 검증할 수 없는 비공개 자료가 포함됐다. 이는 과학적 연구 방식에 반한다.”고 말했다.

2023년 DOE 자체 연구에서도 화학 재활용이 기존 기계적 재활용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오염을 유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바이든 vs. 트럼프 행정부, 플라스틱 정책 어디로?

바이든 행정부는 플라스틱 오염을 중요한 환경 문제로 규정했지만, DOE는 여전히 화학 재활용 연구를 우선시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복귀하면서 플라스틱 산업과의 유착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 DOE 수장으로 프래킹(Fracking) 기업 경영자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가 임명됨.
  • 환경 단체들은 DOE가 플라스틱 감축보다는 산업계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우려.

비욘드 플라스틱(Beyond Plastics) 대표 주디스 엔크(Judith Enck)는 이렇게 말했다.

“에너지 절약을 정말 원한다면, DOE는 플라스틱 감축, 재사용 시스템에 투자해야 한다.”

플라스틱 산업과 정부의 유착,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환경 단체들은 DOE의 플라스틱 정책 결정 과정이 산업계 로비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정부 기관의 투명성 강화: DOE의 연구 자금 배분 및 정책 결정 과정 공개
  • 플라스틱 감축 정책 강화: 재활용 기술만이 아니라,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는 방안 모색
  • 산업계의 영향력 제한: 플라스틱 로비 단체와 정부 기관 간의 협력 재검토

NRDC의 로젠버그(Rosenberg) 국장은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상관없이, 미국 국민은 정부가 플라스틱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명확히 알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플라스틱 문제의 해결책은 혁신적인 재활용 기술이 아니라 생산 자체를 줄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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