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흙탕물’ 북극해로 확산…기후변화가 바꾼 해류의 경로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 해류의 흐름 변화가 시베리아 강물을 사상 유례없이 멀리 확산시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극지연구소(소장 신형철)는 최근 동시베리아해에서 시베리아 강물과 함께 유입된 유기물, 토사 등 육상 기원 물질의 농도가 급격히 증가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활용해 2019년과 2022년 북극해 동부 해역에서 수집한 수온, 염분, 광학적 특성 자료를 정밀 분석한 결과다. 이 분석에 따르면, 2022년에는 시베리아 강에서 유래된 물질들이 이전보다 무려 500~600km 더 동쪽까지 이동해 동시베리아해에 도달했다.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물질의 양도 급증했다. 강물 유입량은 37%, 육상 물질은 29% 증가해 기존 생태계 흐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극지연구소 전미해 박사는 “이러한 이동 경로의 확장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기후변화의 직간접적 결과”라며 “북극 전반의 해양환경 재편을 시사하는 중대한 신호”라고 밝혔다.

해류 방어선 붕괴…‘보퍼트 자이어’ 약화가 결정적 원인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 북극해 해류의 일종인 ‘보퍼트 자이어’의 약화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퍼트 자이어는 캐나다 북부와 알래스카 사이의 보퍼트해에서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담수를 순환시키는 해류 시스템이다. 평상시에는 시베리아에서 유입되는 강물을 동쪽으로 퍼지는 것을 일정 부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2022년에는 동시베리아해에 강한 저기압성 기단이 형성되면서 자이어의 순환 강도가 눈에 띄게 약화됐다. 이에 따라 북극해 표층 해류가 시베리아 동쪽 해역으로 확산됐고, 함께 흘러들어간 강물과 유기물도 사상 처음으로 동시베리아해까지 도달했다는 것이다.

양은진 박사(극지연구소)는 “해수 흐름의 미세한 변화도 담수의 확산 경로를 바꿔놓을 수 있다”며, “이번 사례는 기후변화로 해빙이 줄면서 해류 저항력이 감소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해양기상 전문가인 김형우 박사(前 국립해양조사원)는 “보퍼트 자이어는 북극 담수 순환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며, “이 자이어의 약화는 향후 북극의 기후 패턴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략적 해역으로서의 동시베리아해…항로 변화까지 영향

동시베리아해는 단순한 과학적 관심을 넘어 경제·지정학적으로도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높은 해역이다. 북극해 북서항로(Northern Sea Route)의 관문에 위치한 이곳은 해빙이 줄어들며 상업 운항 가능성이 높아진 지역이다. 이번 연구 결과처럼 육상 기원 유기물이 다량 유입되면, 해양생태계 교란은 물론 항로 운항 환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유기물이 지닌 태양광 흡수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유기물이 많아질수록 수면에서 흡수되는 태양에너지가 증가하고, 그 결과 표층 수온이 상승하게 된다. 이는 해빙 형성 시기를 지연시키고, 결과적으로 북극 항로 개방 시점과 항해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 선박의 운항 가능 기간이 연장되는 장점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생태계 변화와 기상 이변은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 등 북극항로 이용 확대를 검토 중인 국가들은 이 지역의 기후 및 해류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원 채굴 및 해상 물류 산업 전략 수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목이다.

신형철 극지연구소장은 “기후위기 시대에는 극지에서 일어나는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놓쳐선 안 된다”며, “앞으로도 극지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국제 공동연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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