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유럽을 덮친 이례적 폭염 속에서, 57개국이 ‘화석연료 전환’의 구체적 경로를 담은 산타마르타 보고서를 내놓았다. 문제는 같은 회의의 공동 주최국으로 주목받았던 네덜란드와 콜롬비아에서조차 화석연료 보조금 확대와 생산 의존이 거론되며, 합의의 속도와 현실 정치의 역풍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6월 런던 기후행동주간에서 공개된 이 보고서는 유엔 기후협약의 만장일치 협상 틀을 대체하기보다, 교착을 보완하는 ‘의지의 연합’ 모델로 빠른 실행을 노린다. 몽가베이는 산타마르타 프로세스가 화석연료 보조금 개편, 금융 구조 혁신, 무역과 산업 전환을 묶어 ‘화석연료 전환’을 경제와 사회 전체의 과제로 재정의했다고 전했다.
화석연료 전환은 앞서 보도한 데이터센터 오염 우려, 폭염이 전력망을 흔들 때 주민 건강이 먼저 흔들린다, 데이터센터 전력 대안으로 떠오른 분뇨 바이오가스, 기후해법인가 공장식 축산 연장인가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산타마르타 보고서가 나온 배경: 협상 교착과 에너지 불안의 동시 위기
산타마르타 보고서는 2026년 4월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에서 열린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회의’의 결과물이다. 6월 23일 런던 기후행동주간에서 공개된 176쪽 분량의 문서는, 57개국이 참여한 ‘의지의 연합’의 대화 결과를 묶어 ‘화석연료 전환’의 실행 경로를 제시한다. 이 연합은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약 30퍼센트, 공급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는 국가들로 구성됐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보고서가 등장한 맥락은 복합적이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는 런던에서 “11년 연속 가장 더운 해”를 언급하며, 화석연료 기반 시스템이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동시에 키운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해상 수송과 안보 변수, 산유국 정치, 생산 유지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 부담이 겹치면서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졌고, 각국은 기후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같은 문장에서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산타마르타 프로세스의 핵심은 유엔 협상에서 반복돼 온 교착을 ‘보완’하겠다는 정치적 실험이다. 만장일치가 요구되는 협상 구조에서는 대형 산유국의 반대와 산업 로비가 속도를 늦춰 왔다. 보고서는 이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유엔 체제 바깥에서 별도의 합의를 만들어 압력을 높이고 실행 사례를 축적하겠다는 접근을 택했다. 즉, 화석연료 전환을 선언 수준이 아니라 재정과 규제, 무역, 산업 전략의 묶음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5개 경로로 정리된 화석연료 전환: 보조금과 금융이 중심에 섰다
산타마르타 보고서는 ‘정의롭고 질서정연하며 공정한’ 화석연료 전환을 위해 5개 경로를 제시한다. 첫째,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한 집단행동이다. 둘째, ‘산타마르타 정신’을 확산해 시스템 전반의 정책 일관성을 높이자는 제안이다. 셋째, 국가 및 지역 차원의 로드맵을 새로 만들거나 강화하는 경로가 담겼다.
넷째 경로는 거시경제 의존을 끊고 전환 투자를 확대하며, 국제 및 국내 금융 구조의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특히 화석연료 보조금이 핵심 장애물로 지목된다. 보조금은 에너지 가격을 낮춰 단기 정치적 부담을 줄이는 도구로 쓰여 왔지만, 같은 돈이 재생에너지와 효율 투자, 대중교통, 전력망 개혁에 들어갈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전환을 지연시키는 장치가 된다. 보고서가 ‘재정 시스템의 재정렬’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이유다.
다섯째는 생산국과 소비국을 함께 묶어 탈탄소 무역수지로 정렬시키고, 녹색 경제 변환을 지원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발전 부문의 연료를 바꾸는 것을 넘어, 원자재와 제조, 물류, 투자 흐름을 바꾸는 문제로 확장된다. 화석연료 전환이 성공하려면 수출로 재정을 유지해 온 생산국의 재정 공백과 지역 일자리 충격, 수입 의존국의 에너지 비용 급등이라는 반대 방향의 위험을 동시에 다뤄야 한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이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의미도 구체화된다. 보고서는 전환이 권리 기반이어야 하고 지역의 조건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력과 연료 가격 변화는 가계와 산업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고, 취약계층의 에너지 빈곤을 악화시킬 수 있다. 화석연료 전환을 선언하면서 사회 안전망과 노동 전환, 지역경제 대안을 함께 준비하지 않으면 정책 지지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보조금 역주행 논란: 합의는 있었지만 국내정치는 딴길을 간다
보고서가 던진 가장 민감한 질문은 ‘재정의 방향’이다. 산타마르타 프로세스는 화석연료에 들어가는 금융과 보조금을 녹색 에너지로 옮겨야 한다고 못 박지만, 실제 국가 정책은 그 반대 흐름을 보이기도 한다.
몽가베이에 따르면 네덜란드 의회 의원 스여우커 판 오스터하우트는 네덜란드 정부가 화석연료 보조금을 끝내고 녹색 전환에 투자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공동 의장국임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의 관련 부처가 올해 보조금을 늘렸고 추가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발언은 산타마르타 보고서가 제시한 ‘화석연료 전환’의 교과서적 처방이, 국내 산업정책과 물가정치 앞에서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콜롬비아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산타마르타 회의의 개최국이었지만, 대선 과정에서 에너지 논쟁이 있었고 당선된 우파 성향 후보가 가능한 한 많은 프래킹을 제안하는 등 화석연료 확대 메시지가 전면에 등장했다. 이는 개최국이 국제회의에서 전환을 말하면서도, 국내 정치에서는 생산 확대를 약속하는 이중 구조가 반복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보고서가 ‘거버넌스의 강화’를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석연료 전환은 목표의 문제가 아니라 집행의 문제이며, 집행을 가르는 것은 국내 재정, 세제, 규제, 산업 로비, 선거 주기다. 국가 간 합의가 있어도 각국의 예산과 법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실행은 멈춘다. 결국 보조금과 금융의 재배치가 실제로 이뤄지느냐가 산타마르타 프로세스의 신뢰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콜롬비아의 딜레마: 취약한 기후 리스크와 낮은 매장량 사이
콜롬비아는 기후위기에 취약한 국가이면서도, 재정과 수출에서 석유와 가스의 비중이 적지 않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몽가베이는 화석연료 조약 이니셔티브의 라틴아메리카 코디네이터 안드레스 고메스의 발언을 전하며, 콜롬비아의 지속적 화석연료 의존이 오히려 ‘자기 손해’가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매장량과 탐사 경제성이다. 콜롬비아의 석유 매장량은 전 세계의 0.1퍼센트에 불과하며, 접근 가능한 탄화수소 자원은 이미 상당 부분 발견돼 감소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생산분을 탐사가 충분히 대체하지 못했고, 발견 비용이 세계 평균보다 3배 높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런 조건에서는 생산 확대를 밀어붙일수록 환경 피해와 사회적 갈등, 재정 리스크가 동시에 커질 수 있다.
콜롬비아의 논쟁은 화석연료 전환이 ‘부유한 수입국의 도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낸다. 전환은 수출 의존국의 재정 대안을 포함해야 하며, 기술과 자본 접근성이 낮은 국가에는 비부채성 재원과 기술 이전이 요구된다. 보고서가 글로벌 사우스의 높은 자본 비용과 부채 부담을 장애물로 명시한 대목은, 단순한 환경 담론을 넘어 국제금융 구조의 개혁을 전환의 핵심으로 끌어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