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2기, 미국 배터리 재활용 산업 불확실성 높아지다

미국 조지아주 코빙턴에 위치한 한 재활용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폐배터리를 갈아 검은 가루 형태로 만들고 있다. 이 ‘블랙 매스’로 불리는 가루는 원래 해외 정제소로 수출돼 니켈, 코발트 등 귀중한 금속이 추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장에서 직접 리튬카보네이트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이는 전기차 및 에너지 저장장치용 배터리 제조에 필수적인 원료다.

이 공장을 운영하는 매사추세츠주 기반 기업 어센드 엘리먼츠(Ascend Elements)는 북미 유일의 재활용 리튬카보네이트 생산업체로, 이달 말부터 연간 3,000톤 규모의 생산을 목표로 설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미국 내 다른 리튬카보네이트 생산처는 네바다주 실버피크에 위치한 소규모 광산이 유일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추진됐던 친환경 에너지 산업 육성 정책은 대대적인 제동에 직면했다. 보조금과 융자 중단, 에너지청 조직 축소, 그리고 의심스러운 법적 절차를 동반한 기후 정책 철회 등이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와 ‘경제적 자립’이라는 명분 아래 리튬 등 핵심 광물의 국산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배터리 재활용 업계는 혼란 속에서도 일정 부분 기대감을 품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의 배터리 재활용 전문가 비트리스 브라우닝은 “현재 재활용 업계는 정책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리는 ‘중간지대’에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 보조금은 유지되지만, 무역전쟁과 투자 철회로 미래 불투명

이 공장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2년, 어센드 엘리먼츠는 켄터키주 홉킨스빌에 두 번째 재활용 공장을 짓기 위해 미 에너지부(DOE)로부터 3억1,6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재활용 금속을 활용한 배터리 양극재 전구체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네바다주 리노의 아메리칸 배터리 테크놀로지 컴퍼니도 DOE로부터 1억4,400만 달러를 확보해 두 번째 재활용 공장을 건설 중이다. 사이르바 솔루션즈(Cirba Solutions) 역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 신규 재활용 시설을 짓기 위해 2억 달러의 보조금을 확보했다. 이 공장은 연간 50만 대 분량의 배터리용 금속을 생산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일부 보조금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바이든 시대 핵심 법안이었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수정될 경우,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미 하원이 지난 5월 통과시킨 예산안은 EV 구매자 세액공제를 올해 말 폐지하고, 45X 제조 세액공제 종료 시점을 2032년에서 2031년으로 앞당겼다. 이 법안이 상원에서도 통과된다면, 배터리 재활용 업계는 주요 인센티브를 상실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무역정책이다. 중국산 원료에 대한 수입 제한은 미국 내 재활용 확대를 유도할 수 있지만, 동시에 한국 등 우방국과의 무역 갈등은 재활용 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현재 미국 업체들이 생산한 블랙 매스는 상당 부분 한국의 정제소에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했지만, 반발 여론 속에 이를 90일간 유예한 상태다. 업계는 현재로서는 블랙 매스 수출에 대한 직접적인 제약은 없다고 밝혔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정제 설비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친환경 붐’이 사라지면 재활용 수요도 꺼진다

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단순히 광물 확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전기차, 태양광, 풍력 등 청정 에너지 산업 전반의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조다. 하지만 바이든의 IRA가 폐지되거나, 연방정부의 예산이 삭감되거나, 프로젝트 원가가 상승하면, EV와 배터리 공장의 건설 계획은 줄줄이 취소될 수 있다.

벤치마크에 따르면, 미국 내 재활용 가능한 배터리 중 40%는 제조과정에서 발생한 스크랩이며, 15%는 수명이 다한 EV 배터리, 14%는 마이크로 모빌리티 배터리, 나머지 31%는 스마트폰·노트북 등 소형 전자기기 배터리다.

전기차 및 청정 에너지 산업이 위축되면, 이 재활용 가능 물량 자체가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환경단체 E2는 트럼프 집권 이후 약 140억 달러 규모의 청정에너지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지연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업계는 다양한 생존 전략을 모색 중이다. 어센드 엘리먼츠는 리튬을 세라믹, 유리, 산업용 화학 시장에도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리튬의 90%가 배터리에 사용되지만, 산업 전반으로 수요처를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과 3월 서명한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을 ‘비연료 광물의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재활용 기업들도 이 목표에 부합한다며 협력 의사를 밝히고 있다. 리사이클(Li-Cycle)의 CEO 아제이 코차르는 “핵심 광물은 미국의 에너지 경제 회복력에 핵심”이라며, “재활용 산업은 또 다른 국내 공급원으로서 지속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배터리 재활용 산업에 엇갈린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국가 안보를 내세운 광물 자립은 업계에 기회이지만, 동시에 친환경 제조업 축소는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 정책의 방향성과 입법의 향방에 따라 미국 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그 생존 여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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