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야당 보수당이 ‘저렴한 전력’을 앞세워 넷제로 정책을 접고 가스와 원자력을 늘리면 전기요금도 낮추고 기후에도 더 낫다고 주장하자, 전문 기후매체 Carbon Brief가 정면으로 반박하는 팩트체크를 내놓았다. 모델링의 전제가 흔들리면 ‘저렴한 전력’ 서사는 성립하기 어렵고, 오히려 배출이 늘고 전기화가 느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수당이 근거로 든 중도우파 싱크탱크 Onward의 보고서는 2029년 이후 영국의 2050년 넷제로 목표를 사실상 포기하는 ‘대안 경로’를 제시한다. 그런데 보고서 자체의 결과에서도 2030년부터 2050년까지 이 경로는 누적 524MtCO2의 추가 배출을 낳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기를 싸게 하면 전기차와 히트펌프가 늘어 배출이 줄 것’이라는 주장은, 정작 그 시나리오에서 전기차·난방 전기화가 느려지는 것으로 계산돼 모순이 발생한다.
이 논쟁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요금, 에너지 안보, 산업 경쟁력, 그리고 탈탄소 전환의 비용을 둘러싼 공방은 각국에서 반복된다. 전력 부문이 흔들리면 교통·난방 전기화는 물론, 식품산업의 냉장·가공·물류 전기화,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수소, 저탄소 비료와 같은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 전환도 영향을 받는다. 저렴한 전력이라는 구호가 무엇을 전제로 하는지, 그리고 그 전제가 현실을 견디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저렴한 전력은 앞서 보도한 안개 농업이 가뭄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영국 ZEV mandate 완화 논의, 소비자 연 30억파운드 부담 키울 수 있다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저렴한 전력’이 내세운 논리와 보고서의 핵심 결과
보수당은 전기요금이 높아 가계와 기업이 부담을 겪고 있으며, 전기를 더 싸게 만들면 소비자 선택이 전기차와 전기난방으로 옮겨가 배출이 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Onward 보고서는 이 논리를 뒷받침하는 듯한 구성을 취한다. Transira Energy의 모델링을 바탕으로 2050년까지 두 경로를 비교하는데, 하나는 현 정책을 반영한 ‘현행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2029년 이후 넷제로 목표를 폐기하는 ‘대안 경로’다.
Carbon Brief 팩트체크가 주목한 첫 번째 문제는 보고서의 결론이 정치적 메시지와 어긋난다는 점이다. 대안 경로는 2030년부터 2050년까지 524MtCO2의 추가 배출을 낳는다. 분석자들은 원인으로 ‘무탄소 저감장치가 없는 가스발전 비중 증가’를 든다. 즉 ‘저렴한 전력’을 위해 가스를 더 쓰면 전력의 단가가 내려갈 수 있다는 주장과 별개로, 그 선택이 배출을 늘린다는 결과가 모델에서 직접 나온다. 기후변화가 전 지구 배출이 넷제로에 도달하기 전까지 계속 누적된다는 전제에서, 목표 자체를 내려놓는 정책은 위험을 키운다.
정책 논쟁의 본질은 단순히 전기요금을 몇 푼 내리느냐가 아니라, 가격을 좌우하는 요소가 무엇이며 장기적 위험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전가하느냐에 있다. Carbon Brief는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보고서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전제와 계산의 구멍이 많다고 지적했다.
전기화는 빨라지지 않았다…대안 경로에서 전력 수요가 줄어든 이유
‘저렴한 전력’의 핵심 약속은 전기차와 히트펌프 보급 확대다. 그러나 Onward의 대안 경로에서는 전기화가 오히려 느려진다. 보고서는 보일러 교체 지원,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 제한과 같은 보조금·의무 정책을 제거하는 설정을 포함하고, 그 결과 난방과 교통 부문의 전기화가 둔화된다. 전체 전력 소비는 현행 경로보다 7% 낮다. 전기가 싸지면 더 많이 쓰게 된다는 정치적 메시지와 달리, 모델은 ‘덜 전기화하는 Britain’이 비용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동한다고 계산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비용의 경계가 논쟁거리가 된다. RenewableUK 최고경영자 타라 싱은 링크드인에서 대안 경로가 전기 시스템 비용을 낮추는 대신, 전기가 아닌 연료로 대체되는 비용을 모델 밖으로 밀어냈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전기차가 덜 보급되면 휘발유·경유 지출이 늘 수 있는데, 그 규모를 20년간 650억에서 950억 파운드로 추정하며 이런 비용이 시나리오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왜곡은 데이터센터다. 보고서에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부문은 데이터센터로, 신규 계통 접속을 ‘우선’ 지원한다는 정책 설정이 포함된다. 코펜하겐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의 다니엘라 키로가는 접속 가속에 따른 비용이 보고서에서 언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기요금과 전기화는 가계의 소비구조뿐 아니라, 저탄소 식품산업의 전환 속도에도 연결된다. 식품 냉장체인, 대체육·식물성 식품 공장의 열원 전환, 축산업의 메탄 저감 장비와 분뇨 처리 전기화 같은 변화는 전기의 접근성과 가격에 좌우된다. ‘저렴한 전력’이 전기화를 촉진한다는 주장을 하려면, 전기 수요가 왜 줄어드는지, 그리고 줄어든 만큼 화석연료 소비가 어디에서 늘어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가스 가격은 낮고 안정적일까…전기요금 불안의 원인을 되짚다
대안 경로는 가스 발전과 난방에서 가스 의존을 크게 유지한다. 문제는 가스가 최근 영국 전기요금 급등의 주요 요인이었다는 점이다. 전쟁과 지정학적 충격이 공급망을 흔들면서 가스 가격이 급등했고, 그 여파가 전기요금과 물가로 전이됐다. Carbon Brief는 Onward 보고서가 가스 가격이 분쟁 이전 수준으로 떨어져 향후 20년간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가정을 둔다고 지적했다.
Aurora Energy Research의 아슈토시 파델카르는 이런 가정이 이해하기 어렵고, 시장 전망과 크게 어긋난다고 말했다. E3G와 ECIU 분석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수요 급증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4년간의 에너지 가격 급등이 영국에 1830억 파운드의 비용을 초래했다. Onward도 가스 의존 시나리오가 미래의 가스 가격 충격에 더 노출된다고 인정하면서도, 2040년에 추가 연료비가 60억 파운드 늘어나는 정도로 영향을 작게 잡는다.
보수당 지도부는 북해 석유·가스를 더 쓰면 요금을 내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지만, 북해의 잔존 물량과 영국의 수입 구조를 감안하면 가격은 글로벌 시장에서 결정되고 지정학적 변동성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 Regen의 조니 가우디는 이는 결국 ‘글로벌 가스 가격을 따라가는 수입 가스 의존’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 논쟁은 기후정책의 비용을 논할 때, 단기 요금 인하와 장기 리스크를 어떻게 배분할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가스 가격의 변동성은 가계의 에너지 빈곤 문제를 키우고, 식품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비료 생산, 농산물 저장, 식품 가공의 에너지 비용이 흔들리면 소비자 물가와 취약계층의 영양 접근성이 악화될 수 있다. ‘저렴한 전력’을 위해 가스를 늘리는 선택이 가격 안정성을 담보하는지부터 엄밀히 따져야 한다.
가스발전소 건설비 가정이 지나치게 낮다…터빈 공급난과 데이터센터 수요
Onward의 대안 경로는 2050년까지 가스발전 설비 21GW를 추가로 짓는 설정을 담는다. 이는 약 20개의 신규 시설에 해당하며, 영국의 현재 가스 발전 용량 대비 약 70% 증가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를 ‘변동성’ 전원으로 규정하고, 이를 대체할 ‘확정’ 전원으로 가스와 원전을 늘리는 구도를 제시한다.
Carbon Brief가 짚은 핵심 허점은 건설비 가정이다. Transira Energy 보고서의 소규모 문구에 따르면 신규 가스발전소의 자본비용을 1kW당 650파운드로 잡았다. 하지만 다른 최근 분석은 그보다 훨씬 높다. 2025년 GridLab 보고서는 2026년과 2027년 준공 예정인 미국 신규 가스발전소의 비용 범위를 1kW당 1116달러에서 1427달러로 제시하며, 더 최근 프로젝트는 2000달러 이상이 흔하다고 언급한다.
가스 터빈 비용이 오른 배경으로는 전 세계적인 공급 타이트 현상이 거론된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확대와 석탄에서 가스로 전환하는 국가들의 수요가 터빈 시장을 압박했고, 국제에너지기구는 미국의 데이터센터 수요가 다른 지역의 단기 터빈 공급 여력을 제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환경에서 ‘싸게 짓는 가스발전소’를 전제로 한 저렴한 전력 전략은 현실의 조달 비용과 공정 리스크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
또한 가스발전 확대는 대기오염과 건강 비용, 그리고 메탄 누출 등 상류부문 배출 문제와 맞물린다. 기후·환경 비용이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수록 ‘저렴한 전력’은 단기 청구서가 낮아 보일 뿐 사회 전체 비용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