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식물성 라벨링 금지안이 유럽의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통과되면서, 식물성 제품과 배양육 같은 동물 비사용 대체품이 ‘스테이크’ ‘베이컨’ 등 익숙한 육류 용어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범위가 급격히 좁아질 전망이다. 소비자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주장과,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과 혁신을 위축시킨다는 반발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특히 이번 표결은 기후위기가 불러온 기록적 폭염이 유럽 전역의 사회적 압박으로 떠오르는 시점과 맞물려 상징성을 더했다. 식품 시스템 전환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지속가능한 대안 식품의 언어를 규제하는 방식이 과연 공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정책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EU 식물성 라벨링 금지안은 앞서 보도한 데이터센터 전력 대안으로 떠오른 분뇨 바이오가스, 기후해법인가 공장식 축산 연장인가, 오틀리, 중국 사업 매각 검토… 성장 시장에서 구조조정 카드 꺼냈다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유럽의회 표결 결과와 남은 절차
EU 식물성 라벨링 금지안은 2026년 6월 30일 유럽의회 표결에서 찬성 560표, 반대 75표, 기권 25표로 가결됐다. 유럽의회는 이를 농가 지원을 위한 ‘새 조치’의 일부로 설명했다. 다만 이번 결정은 최종 확정이 아니라 잠정 합의 단계로, 시행되려면 EU 이사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 시점에 대한 고정된 법적 기한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책 패키지에는 유제품 생산자 보호, 마케팅 관련 새 규칙, 그리고 ‘고기’의 정의를 동물의 ‘식용 부위’로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정의가 법적으로 채택되면, 식물성 제품이나 배양육처럼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제품은 일정 범위의 ‘고기 관련 단어’를 제품명이나 표시에서 쓰기 어려워진다. 규제의 대상은 식물성 대체육뿐 아니라 ‘기타 대안’으로 묶인 범주까지 확장돼, 기술 기반 대체 단백질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무엇이 금지되나…‘베이컨’부터 ‘티본’까지
EU 식물성 라벨링 금지안에서 핵심은 ‘육류 연상 용어’의 광범위한 금지 목록이다. 알려진 금지 단어에는 소고기, 송아지고기, 돼지고기, 가금류, 닭, 칠면조, 오리, 거위, 양고기, 염소고기 등 동물 종을 직접 지칭하는 표현뿐 아니라, 부위와 형태를 특정하는 단어들이 대거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드럼스틱, 텐더로인, 설로인, 플랭크, 로인, 스테이크, 립, 숄더, 생크, 찹, 윙, 브레스트, 리버, 싸이, 브리스킷, 리바이, 티본, 럼프, 베이컨 등이 거론됐다. 이런 단어들은 소비자가 조리법과 식감을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해 대체육 제품에서 널리 사용돼 왔다. 금지안이 확정될 경우 기업들은 해당 표현을 피하면서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대체 표현을 찾아야 한다.
정책 수립 측은 이런 조치가 표시의 명확성을 높이고 생산자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지만, 반대 측은 금지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 사실상 대체품이 ‘무엇을 대체하는지’ 설명하는 언어를 빼앗는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3년 유예기간의 의미…재고 처리와 리브랜딩 비용
EU 식물성 라벨링 금지안이 최종 확정되더라도 즉시 전면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식물성 및 배양육 생산자에게는 3년의 전환 기간이 부여된다. 이 기간 동안 기업은 기존 재고를 소진하고, 이후 생산되는 제품이 새 규칙에 맞도록 제품명, 포장 문구, 마케팅 자료를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3년 유예가 곧 부담 완화를 의미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식품 산업에서 라벨과 브랜드 자산은 유통 계약, 광고물, 온라인 판매 페이지, 수출용 포장 등과 촘촘히 연결돼 있다. 용어 변경은 단순히 포장 한 줄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소비자 인지와 검색 노출, 매대에서의 비교 가능성까지 흔들 수 있다. 특히 대체육 시장은 제품 카테고리 자체가 빠르게 성장하는 단계여서, 이름과 설명 방식이 소비자 접근성과 직결된다.
유통 현장에서는 동일한 제품이 국가별로 다른 명칭을 갖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EU 내 규칙이 강화될수록 기업은 언어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더 중립적이고 추상적인 이름을 택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제품의 용도와 특징이 덜 명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비자 혼란’ 논리와 반박…선택권과 혁신의 충돌
EU 식물성 라벨링 금지안의 주요 근거로는 ‘소비자 혼란 방지’가 자주 등장한다. 고기나 부위명을 식물성 식품에 쓰면 소비자가 원재료를 착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관련 연구들은 소비자가 이 이슈를 크게 문제 삼지 않거나, 혼란이 주요한 구매 장애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 왔다.
비판 측은 규제가 실질적 소비자 보호라기보다 시장 경쟁 구도를 둘러싼 이해관계에 가깝다고 본다. 더 비건 소사이어티의 공공정책 담당자 알리스테어 커리는 과거 발언에서, 이런 결정이 소비자 선택권을 줄이고 비건 식품 분야의 혁신을 저해하며, 기업에 리라벨링과 리마케팅 비용을 떠넘겨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핵심 쟁점은 ‘정확한 정보 제공’과 ‘표현의 자유로운 비교 가능성’ 사이의 균형이다. 식물성 제품이 동물성 고기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맛과 용도, 조리 경험이 유사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관용적으로 사용된 단어들까지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재료 표기, 알레르기 정보, 영양 성분 같은 필수 정보가 더 중요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