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디게르바르덴 산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결과 약 1,300년 전으로 추정되는 고대 스키 한 쌍이 완전한 형태로 발견됐다. 두 스키는 각각 자작나무와 소나무로 제작됐으며, 7년 간격을 두고 단 5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발굴됐다. 전문가들은 이 유물이 현존하는 가장 잘 보존된 고대 스키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특히 바인딩(끈과 고정 장치)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어 당시 스키 기술과 이동 방식에 대한 복원과 실험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발견은 노르웨이 인란데주와 오슬로 문화사 박물관이 공동 주도하는 ‘얼음의 비밀(Secrets of the Ice)’ 프로젝트를 통해 이뤄졌다. 해당 프로젝트는 2006년 극심한 빙하 해빙으로 수백 점의 고대 유물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세계 최초의 빙하 고고학 프로그램으로, 고정된 얼음 지대(빙설 패치)를 중심으로 유물을 수집하고 있다. 위성사진, 드론 영상, 지역 순록 목동 및 등산객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탐사 지역을 정밀 분석하고 있으며, 노출 즉시 유물이 훼손되지 않도록 빠르게 수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고산지대 스키 발견은 과거 인간 활동의 공간적 범위를 재정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에는 고대 스키가 주로 저지대에서 크로스컨트리 용도로 사용됐다고 여겨졌지만, 이번 사례는 겨울철 고산지대에서도 사냥과 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효율적인 자원 확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였음을 시사한다.
유물과 기후 적응의 증거
이러한 유물 발견은 단지 고대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극한의 기후 조건 속에서 인류가 어떻게 생존 전략을 변화시켰는지를 설명하는 과학적 증거로 해석된다. 특히 6세기 중반부터 7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후기 고대 소빙하기(Late Antique Little Ice Age)는 북유럽 전역에 극심한 한기를 불러왔고, 이는 노르웨이 산악지대의 농업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에 따라 지역 주민들은 농경 활동보다 보다 안정적인 생존 수단이었던 순록 사냥에 의존하게 됐다. 실제로 해당 시기의 화살촉과 사냥 도구들이 대거 빙하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이는 사냥 활동의 빈도와 집중도가 당시 급격히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얼음의 비밀’ 프로젝트 공동 책임자인 라르스 필뢰 박사는 “기후 악화로 농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고산 사냥 활동이 전략적으로 강화되었음을 유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과학자들은 고대 기후를 분석하기 위해 나이테 연구(연륜연대학) 자료를 병행해 활용하고 있다. 나무의 성장 고리를 분석하면 연도별 기후 조건, 가뭄, 한파 등을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이동, 거주지 변화, 자원 활용 방식과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콜럼비아 대학교 라몬트-도허티 지구관측소의 고기후학자 니콜 다비 박사는 “기후 데이터가 100년 남짓에 불과한 상황에서 수백~수천 년 전 나이테 자료는 오늘날 기후 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밝혔다.
기후 과학과 고고학 간의 융합은 인간과 자연 간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새로운 통로를 제시하고 있다. 유물과 기후 데이터를 연결해 당시 사회의 위기 대응 방식을 파악함으로써, 기후 변화에 대한 인간의 장기적인 적응 능력을 분석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필뢰 박사는 “빙하 고고학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기후 변화에 맞서는 인간의 복잡하고도 전략적인 대응 방식을 밝혀내는 중요한 학문적 분야로 발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빙하가 녹으며 드러나는 유산
노르웨이 산악 빙하 속에서 계속해서 출토되고 있는 고대 유물들은 기후 변화가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다. 스키, 화살, 신발, 망토, 나무 그릇 등 다채로운 유물들은 단지 일상 도구가 아닌, 극한 기후 속 생존을 위한 고도의 전략과 기술을 담고 있다. 특히 이들 유물이 빙하 속에서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나온다는 점은, 그 자체로도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한편, 현재의 기후 위기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인류의 삶을 복원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녹아내리는 빙하가 그동안 얼음 속에 잠들어 있던 수천 년 전 유물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인류의 역사적 복원 작업에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이 단순히 과거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향후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필뢰 박사는 “기후 변화가 가져온 손실 속에서도 우리는 과거 인류의 적응력과 회복력을 보여주는 놀라운 자료들을 얻게 됐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유물이 발견되면서, 기후 위기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향한 지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르웨이 빙하 속 유물은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