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력 부문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연방 정부의 마지막 안전장치가 무너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환경보호청 EPA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 시절 마련된 발전소 탄소 배출 제한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석탄 발전의 단계적 퇴출이 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기요금과 일자리, 전력망 안정성을 내세운 규제 완화가 기후위기 대응과 공중보건 비용을 어디까지 되돌릴지 논쟁이 커지고 있다.
이번 EPA 탄소 규제 폐지는 단순히 규정 한 줄을 지우는 문제가 아니다. 오바마 시절 Clean Power Plan부터 트럼프 1기 폐지, 대법원 판단, 바이든의 우회 규정, 그리고 다시 트럼프의 전면 철회로 이어진 정책 롤러코스터가 전력 투자 결정을 흔들어왔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이 석탄의 경제성을 되살리며, 시장의 자연 감축 흐름마저 늦추는 변수로 부상했다. 그 결과는 전력 부문의 배출뿐 아니라 식품 산업의 전기화, 지속가능한 소비 트렌드, 대기오염 취약계층의 건강, 나아가 동물복지와 농식품 공급망의 탄소 발자국에도 파급될 수 있다.
EPA 탄소 규제 폐지는 앞서 보도한 영국 AI 데이터센터 탄소배출 논란: 계획된 2곳이 ExxonMobil보다 더 많이 배출할 수 있다는 분석, 뉴잉글랜드 산불 대응, ‘연방 인력 감축’ 앞에서 흔들리나…와일드랜드 소방관들의 burning questions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석탄은 왜 핵심 쟁점이 되는가
석탄은 주요 에너지원 가운데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연료로 꼽힌다. 누적 배출 기여도가 크고, 같은 전력을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석유나 천연가스보다 높다. 그래서 기후 전문가들은 석탄 발전의 퇴출이 지구 온난화를 늦추는 데 가장 큰 변화라고 본다.
미국에서도 석탄은 전력 부문 기후정책의 중심이었다. 연방 정부가 전력회사에 석탄 사용을 줄이도록 압박할 수 있는지, 어떤 방식이 법적으로 가능한지, 비용 부담을 누구에게 전가하는지에 따라 정책 설계가 갈렸다. 이번 EPA 탄소 규제 폐지 발표는 이런 논쟁의 축을 다시 규제 완화 쪽으로 급격히 이동시키는 조치로 해석된다.
오바마에서 바이든까지, 그리고 다시 뒤집힌 규제의 역사
미국의 발전소 탄소 규제는 20년 가까이 정권 교체 때마다 방향이 바뀌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의회에서 탄소세 도입이 좌절된 뒤 Clean Power Plan을 추진해 전력회사들이 석탄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 1기에서 해당 규정이 폐지됐고, 이후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이 전력회사에 연료 전환을 사실상 강제하는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한계를 의식해 2024년 규정에서 다른 접근을 택했다. 석탄 발전소가 2030년대에 문을 닫거나,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대부분을 포집하는 설비를 갖추라는 선택지를 제시해, 연료 전환을 직접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배출 감축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주 EPA를 통해 이 규정을 다시 없애겠다고 밝혔다. 그 방향은 단순 수정이 아니라 전력 부문에서 탄소 배출에 대한 연방 차원의 규제를 사실상 지우겠다는 데 가깝다. EPA는 올해 앞서 자동차 분야 기후 규제를 되돌릴 때와 유사하게, 기후과학의 불확실성과 비용 절감을 근거로 들었다.
트럼프 EPA 탄소 규제 폐지의 명분과 쟁점
트럼프 행정부와 EPA 수장 리 젤딘은 석탄을 둘러싼 규제가 전력의 신뢰성과 가격 경쟁력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젤딘은 텍사스에서 열린 국제 에너지 행사에서 오바마와 바이든 행정부가 석탄을 겨냥한 규제 전쟁을 벌였다고 말하며, 규제 완화가 일자리와 가격,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논리는 유권자에게 즉각 체감되는 전기요금과 전력 공급 안정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다만 기후정책의 비용을 전기요금으로만 좁혀 평가하면, 장기적으로 커지는 기후 재난 비용과 대기오염에 따른 의료비, 생산성 손실은 밖으로 밀려난다. 발전소 규제는 단지 배출량 숫자를 줄이는 게 아니라, 그 배출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하는지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Grist 보도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전력 부문 배출 감축을 위한 연방의 규제 수단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투자자와 전력회사에 전달되던 정책 신호가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일대 환경경제학자 케네스 길링엄은 목표가 있어야 기업 의사결정이 그 방향으로 정렬되는데, 그 신호와 강제력이 무뎌졌다고 평가했다.
규제가 흔들려도 석탄이 줄어든 이유, 그리고 달라진 변수
흥미로운 점은 규제의 성패와 무관하게 미국의 석탄 발전이 지난 20년 동안 크게 감소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주로 셰일 프래킹 붐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내려가면서 전력회사들이 석탄을 가스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천연가스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석탄보다 단위 전력당 배출이 적어, 전력 부문 전체 배출량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가는 데 영향을 줬다.
하지만 시장에만 맡겨둔 감축은 속도와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 최근 들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석탄 발전소의 경제성이 일부 지역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특히 중서부와 중부 대서양처럼 도매 전력시장에서 전력 가격이 오르는 구간에서는 노후 석탄 발전소를 더 오래 돌리는 선택이 유혹적이 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2024년 규정을 설계할 당시에는 석탄 설비 용량과 가동이 계속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전력 수요가 늘자 여러 전력회사가 석탄 자산의 퇴출 시점을 뒤로 미루는 흐름이 나타났다. 트럼프 행정부가 규제를 거둬들이면, 이런 연장 움직임에 제도적 제약이 더 줄어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