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에 꽂힌 유통업계. 돼지열병·조류독감 걱정 없는 채식 소비 확산 콩고기·밀고기 등 대체육, 성장 시장으로 주목
지난 주말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선 비건페스티벌이 열렸다. 채식 먹거리와 친환경 의류, 식물성 화장품 등을 파는 100여 개 부스와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일부 방문객은 ‘일회용품 사용 금지’라는 취지에 맞춰 준비해온 식기와 텀블러에 구매한 음식을 담아갔다.
7회째 개최된 비건 페스티벌은 앞서 5만 명이 넘는 누적 방문객을 동원했다. 이중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비건(Vegan·극단채식주의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온 이들도 많았다. 직장인 김수진(28) 씨는 “평소 관심 있던 비건을 직접 체험해 보기 위해 왔다”며 “채식은 어려운 건 줄 알았는데, 식물 고기나 달걀이 들어가지 않은 빵 등 대체품이 많다는 걸 알았다. 평소에도 쉽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강하고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채식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2008년 15만 명에서 지난해 150만~2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인구의 2~3% 규모다. 완전 채식을 하는 비건 인구도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채식 소비도 늘고 있다. 11번가의 지난해 콩고기 매출은 전년 대비 17%, 식물성 조미료는 8%, 채식 라면은 11% 증가했다. 마켓컬리에서는 올 상반기 달걀과 우유 등을 넣지 않은 비건 베이커리의 매출이 전년 하반기보다 289% 늘었다.
유통업계는 채식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농심은 지난달 육류를 사용하지 않은 ‘강황쌀국수볶음면’을 출시했다. 소스와 건더기에 육류를 사용하지 않아 채식 단계 중에서 유제품을 허용하는 락토 베지테리언까지 먹을 수 있다. 앞서 농심은 수출용으로 비건 전용 컵라면인 ‘순라면’을 출시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 호응을 얻었다.
편의점에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도시락이 등장했다. CU는 5일부터 100% 식물성 원재료로 만든 ‘채식주의 간편식 시리즈(도시락, 버거, 김밥)’를 판매한다. 햄버거 패티에 쓰는 밀고기는 롯데푸드에서, 도시락 김밥에 들어가는 콩고기는 소이마루에서 공급받았다. 가격도 2500~3500원 선으로 일반 도시락과 비슷하다.
조성욱 BGF리테일 간편식품팀장은 “국내 채식 시장의 빠른 성장에 맞춰 비건 간편식을 업계 최초로 출시하게 됐다”며 “상품 생산 과정과 구성을 효율화해 제조 단가를 낮췄다. 일반 전문점보다 구매 단위가 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대체 육류 개발도 가속도가 붙었다. 동원F&B가 수입·판매하는 비욘드미트는 출시 한 달 만에 1만 팩이 팔려나갔다. 롯데푸드도 지난 4월 밀 단백질 기반의 식물성 고기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출시했다. 스테이크, 햄, 소시지 등으로 종류를 확대해 연내 50억원 규모의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한다.
CJ제일제당과 풀무원도 식물성 고기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를 확대하는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대체 육류 시장규모는 2013년 137억3000만달러(약 15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186억9000만달러(약 21조6000억원)까지 성장했다. 뉴욕타임스는 2030년 이 시장이 850억 달러(약 1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2040년에는 육류 소비의 60%를 대체 육류가 차지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독감 등에서 벗어나려는 요구와 환경 윤리 등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요구 등이 맞물리면서 채식 수요가 높아질 전망”이라며 “식감이 질기고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을 해결하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