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사람들과 함께 밥 먹을 곳이 없었어요. 분위기 깨기 싫어서 그냥 타협하고 고기를 먹은 적도 많고요”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게 식사지만, 비건들은 그것마저 힘들다. 심지어 식당에서 달걀을 빼고 라면을 주문했으나 막상 받은 라면에는 달걀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달걀을 가려내고 라면을 먹으려고 했지만 강하게 올라오는 달걀 냄새로 인해 라면을 먹기 힘들었던 경험이 비건에게는 있다. 또한 급하게 매점에서 쿠키 하나를 사 먹으려 해도 우유가 첨가돼 있어 음식을 고르기 힘들어 곤란했던 적이 있다. 이렇게 항상 어떤 음식을 먹으려면 이것저것 따져서 생각하고 확인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경남 창원에 사는 A(30)씨는 지난 6월 동네에 채식 레스토랑을 차리며 개업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창원에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을 위해 채식 레스토랑이 들어선 건 이곳이 처음이다. 그는 중학생 시절 공장식 축산업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일주일에 한 번 채식하기로 다짐했다. 이후 쭉 채식을 지향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억지로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결국 A씨는 직장을 그만둔 뒤 채식인과 비채식인이 함께 외식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채식주의자 커뮤니티인 한국채식연합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전국 채식 식당은 500여곳이다. 그중 절반이 서울에 몰려있고 경남은 4%인 20여곳에 불과하다. 육류 및 계란, 우유 등 동물성 원료를 사용한 음료를 먹지 않는 비건에게 외식은 쉽지 않다.
A씨는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를 깨기 싫어 고기를 먹은 적도 많다고 회상했다. 꼭 회식 자리가 아니더라도 약속 자리마다 서로 눈치 보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한다. 채식주의자 커뮤니티인 한국채식연합은 국내 채식 인구를 150만∼200만명으로 추산했다. 2008년 추산했던 15만명에서 10배 이상 증가했다. 자연스럽게 채식 식당도 늘었지만, 경남에는 여전히 인프라가 부족하다.
대학 진학에 따라 서울로 이사해 5년째 살고 있다는 B(24)씨는 환경 보호를 위해 지난 2월부터 채식을 지향하면서 외식이 또 다른 즐거움이 됐다. B씨는 “채식 식당마다 개성이 있어 메뉴를 고르는 재미가 있다”며 “식당에 많은 사람이 식물성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내가 잘하고 있다’는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본가가 경남 진주인 그는 “고향에 내려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난감한 건 어쩔 수 없다”면서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의 채식주의자들이 좀 더 자유롭게 외식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B씨는 14일 “사람들의 인식 개선과 함께 ‘채식=영양 불균형’ 공식을 깰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채식 식당이 개업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