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의 심각성과 그 파급 효과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거에 왜 이를 막기 위한 조치가 더 빨리 취해지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970년대, 이미 기후 변화의 위협을 경고했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지미 카터(Jimmy Carter),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이다. 그는 시대를 앞선 비전으로 기후와 환경 문제에 대해 중요한 정책들을 추진했지만, 그의 유산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한 채 ‘선택되지 않은 길’로 남았다.
카터는 12월 29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기후와 에너지 정책은 현재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주목할 만한 교훈을 제공한다.
1970년대의 에너지 위기 속에서 시작된 비전
1977년 백악관에 입성한 지미 카터는 미국이 1973년 OPEC 석유 금수 조치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인한 글로벌 석유 시장의 혼란 속에서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던 시기에 대통령직을 맡았다. 당시 정치권의 주요 초점은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공급이었으며, 환경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카터는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 환경적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터는 대통령 과학 고문이었던 프랭크 프레스(Frank Press)로부터 화석 연료와 이산화탄소 배출, 그리고 지구 온난화 사이의 연관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받았다. 카터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국민들에게 “화석 연료에 대한 강박적 의존”을 해결해야 한다며 에너지 위기를 “도덕적 전쟁”에 비유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까지 미국 에너지 사용량의 20%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비록 이 목표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야심찬 비전이었다.
재생 가능 에너지와 정부 투자
카터는 미국 에너지 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1977년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를 설립했다. 이는 정부의 에너지 관련 프로그램을 통합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또한 태양열 및 풍력 에너지 연구를 선도하기 위해 태양에너지연구소(Solar Energy Research Institute, SERI)를 설립했으며, 이는 오늘날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로 발전했다. 카터 행정부는 이 기관을 통해 태양열 및 풍력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기 위해 연방 정부의 직접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카터는 에너지 정책에서 연구개발(R&D)에 대한 직접적인 연방 투자를 강조했는데, 이는 오늘날 정치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접근 방식이지만, 당시 재생 가능 에너지 부문의 성장에 필수적이었습니다,”라고 컬럼비아 기후 대학원의 리아 아로나우스키(Leah Aronowsky) 교수는 평가했다.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들
1979년, 카터는 백악관 지붕에 32개의 태양열 패널을 설치하며 재생 가능 에너지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 패널들은 백악관의 온수 공급을 담당했으며,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화석 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그의 비전을 드러냈다.
그는 또한 미국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호소하며 난방 온도를 낮출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1978년 국가 에너지법(National Energy Act)을 통해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에 대한 세금 혜택을 제공하고, 에너지 비효율적인 차량에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상당 부분은 후임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철회되거나 약화되었다. 특히, 1986년 레이건 행정부는 백악관 지붕에서 태양열 패널을 철거하며 카터의 상징적 정책을 폐기했다.
환경 보호와 획기적인 법안
재생 가능 에너지 정책 외에도, 카터는 환경 보존과 오염 방지 분야에서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
1억 에이커의 황야를 보호한 법안
1980년, 카터는 알래스카 국립이익토지보존법(Alaska National Interest Lands Conserva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1억 에이커 이상의 황야를 보호하며, 석유 시추와 목재 채취로부터 이 지역을 지켰다. 이로 인해 국립공원 및 야생보호구역 체계는 두 배로 확대되었다.
슈퍼펀드(Superfund)와 오염 정화
카터의 환경 정책 중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1980년 종합환경대응보상책임법(Comprehensive Environmental Response, Compensation, and Liability Act), 즉 슈퍼펀드다.
이 법안은 환경보호국(EPA)에 유해 폐기물로 오염된 부지를 정화할 권한을 부여했으며, 산업 시설, 광산, 쓰레기 매립지 등으로 인한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석탄과 합성 연료: 혼재된 유산
그러나 카터의 환경 정책은 항상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1979년, 그는 석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석탄과 오일 셰일을 액체 연료로 전환하는 합성 연료 산업 개발 프로그램을 지지했다. 이 프로그램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지만, 환경 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카터의 유산은 혼재된 결과를 남겼습니다,”라고 아로나우스키 교수는 말했다. “그는 환경 보호와 재생 가능 에너지 분야에서 획기적인 법안을 도입했지만, 석탄 산업을 지원한 점에서 모순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카터 스스로도 이러한 모순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1978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태양과 해양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화석 연료, 특히 풍부한 자원인 석탄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카터가 1981년 퇴임할 때, 그는 에너지 및 환경 정책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의 후임자들은 많은 정책을 철회했고,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속도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전은 현대 기후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2022년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전기차와 재생 가능 에너지 투자에 대한 세금 혜택을 포함하며, 이는 카터의 에너지 효율 정책과 유사한 면이 있다.
끝까지 이어진 그의 헌신
백악관을 떠난 후에도 카터는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2017년, 그는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있는 자신의 땅 10에이커(약 4만제곱미터)를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에 할당했다. 이 태양광 발전소는 플레인스 주민의 절반 이상이 사용하는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지미 카터의 기후 유산은 우리가 놓친 기회들을 상기시켜준다. 그의 리더십이 완전히 실현되고 지속되었다면, 오늘날 세계는 기후 변화에 훨씬 더 잘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카터의 비전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영감이자, 과학적 증거와 책임감 있는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의 유산은 현재와 미래 세대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