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로 빙하 서식지 위협…보호 대책은 미비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FWS)이 지난 7월 마운트 레이니어 흰꼬리뇌조(Mount Rainier White-Tailed Ptarmigan)를 *멸종위기종법(Endangered Species Act, ESA)*에 따라 공식적으로 *위기종(Threatened Species)*으로 지정했다. 이는 환경단체인 생물다양성센터(Center for Biological Diversity)가 처음으로 보호를 요청한 지 14년 만의 결정이다.
이번 지정은 워싱턴주 캐스케이드산맥 및 브리티시컬럼비아 지역에 서식하는 이 조류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조치로 평가된다. 그러나 빙하 감소와 기후 변화로 인한 서식지 악화 속에서 보호 대책이 충분한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빙하 감소로 사라지는 서식지
마운트 레이니어 흰꼬리뇌조는 고산 지역에 적응한 조류로, 발에는 털이 나 있어 눈 위를 쉽게 걸을 수 있고, 계절에 따라 깃털 색을 바꾸어 환경에 위장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여름에는 갈색과 흰색이 섞인 깃털을, 겨울에는 완전히 흰 깃털을 갖추며, 꼬리는 항상 흰색을 유지한다.
이 새는 해발선 위의 험준한 암석 지대와 눈 덮인 산악 지형에서 주로 발견되며, 고산 툰드라 식생에 의존해 살아간다. 주요 먹이는 나뭇가지, 잎, 싹, 씨앗 등으로, 이들이 자라는 환경은 봄철 빙하 해빙수와 여름철 빙하 용융수에 의해 유지된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이들의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북캐스케이드 빙하는 1900년부터 2009년까지 56%나 축소되었으며, 이 지역의 연구자인 마우리 펠토(Mauri Pelto)에 따르면 마운트 베이커(Mount Baker) 근처의 슉산(Shuksan) 및 뇌조 능선(Ptarmigan Ridge)에서 관찰되던 빙하 13개 중 7개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빙하의 후퇴는 토양 수분 감소, 고산 식생의 변화, 장기적인 서식지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나무가 더 높은 고도까지 확장되면서 흰꼬리뇌조가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멸종위기종법(ESA) 지정의 의미
미국 멸종위기종법(ESA)은 보호가 필요한 종을 위기종(Threatened) 또는 *멸종위기종(Endangered)*으로 지정하여 법적 보호를 제공한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마운트 레이니어 흰꼬리뇌조는 연방 정부 및 민간 부문의 개발 프로젝트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콜럼비아대학 사빈 기후변화법 센터(Sabin Center for Climate Change Law)의 연구원 제시카 웬츠(Jessica Wentz)는 ESA가 “상당히 강력한 보호 장치”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ESA에 의해 보호받는 종이 존재하는 지역에서 연방 정부가 승인하는 공공 개발 프로젝트는 반드시 이 종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야 하며,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FWS)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웬츠는 ESA에서 보호하는 ‘핵심 서식지(Critical Habitat)’ 개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해당 종이 계속 생존하는 데 필요한 환경이며, 개체 수 회복을 위해 필수적인 공간”이다. ESA에 따라 종이 보호 목록에 오르면, 핵심 서식지를 지정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그러나 현재 FWS는 마운트 레이니어 흰꼬리뇌조의 핵심 서식지 지정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지연되는 보호 조치, 충분할까?
멸종위기종법(ESA) 보호 목록에 포함되기까지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콜럼비아대학 생태학 및 환경생물학부(Ecology, Evolution, and Environmental Biology)의 연구원 에리히 에버하드(Erich Eberhard)는 “ESA 보호 지정이 종종 지나치게 늦어져, 개체군이 극도로 감소한 뒤에야 보호가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ESA는 법적으로 2년 내 보호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평균 7배나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이 나오기까지 14년이 걸린 만큼, 마운트 레이니어 흰꼬리뇌조는 이미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생물다양성센터(Center for Biological Diversity)의 멸종위기종 담당 이사인 노아 그린월드(Noah Greenwald)는 FWS의 핵심 서식지 지정 거부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빙하 감소, 눈 덮임 감소, 나무가 고산 지대로 확장되는 현상이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핵심 서식지 지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해당 종이 기후 변화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대체 서식지를 확보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후 변화와 법적 보호의 한계
기후 변화가 마운트 레이니어 흰꼬리뇌조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지만, 현재 미국 법 체계에서는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ESA 보호 조치에 직접 연결하는 것이 어렵다.
ESA가 제정된 1973년에는 기후 변화가 주요 환경 이슈로 대두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에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명확히 규정하는 조항이 없다. 이에 따라 연방 기관이 기후 변화의 영향을 고려할 법적 의무가 있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웬츠 연구원은 “대규모 화석 연료 개발 프로젝트가 특정 종에 미치는 기후 영향을 분석할 수 있도록 ‘기후 귀속 과학(Climate Attribution Science)’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후 귀속 연구를 통해 특정 산업 활동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분석할 수 있다면, ESA 보호 지정 과정에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고려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이 온실가스 배출과 ESA 보호를 연계할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다. 웬츠는 “이 문제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라고 말하며, 법적 해석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호는 시작됐지만, 갈 길이 멀다
마운트 레이니어 흰꼬리뇌조의 위기종(Threatened) 지정은 기후 변화로 인해 급감하는 개체군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핵심 서식지 지정이 보류된 상태에서, 이 조류가 실질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온실가스 배출과 멸종 위기종 보호 간의 연계를 강화하는 법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기후 변화로 인한 서식지 손실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린월드는 “기후 변화가 산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지만, 배출 감축 조치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모두가 심각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운트 레이니어 흰꼬리뇌조의 생존 여부는 기후 변화 대응의 속도와 정책적 결단력에 달려 있다. 과연 이 새가 미래에도 빙하가 녹아 흐르는 산악 지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