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동안, 그리고 12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미국은 세계 최고의 과학 강국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대학과 정부 기관 곳곳에서 미국 연구진은 치명적인 질병을 치료하고, 기상 예측을 혁신하며, 온실가스 배출을 체계적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2기에서는, 이 견고했던 과학 인프라가 전례 없는 속도로 해체되고 있다. 오랜 기간 쌓아온 연구 역량과 국제적 리더십이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 연방정부가 주도해 온 기후 연구, 기초 과학 지원, 국제 협력체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그 여파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과학 인프라 대대적 해체 착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반부터 과학계를 정조준했다. 1990년 의회가 설립한 미국 글로벌 변화 연구 프로그램(USGCRP)은 물론, 국가 기후 평가(NCA) 발간 작업까지 중단시키며 핵심 과학 연구를 차례차례 무너뜨리고 있다.
4년마다 발간되는 NCA는 미국 각 지역의 기후 위험을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제시해 온 중요한 보고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이 보고서를 총괄해온 컨설팅 업체와의 계약을 전격 해지했다. 사실상 차기 보고서 발간을 중단시키는 조치로, 과학계 안팎에서 충격과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행정부의 과학 해체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NASA의 기후 연구 프로젝트를 축소하고, NOAA(해양대기청)의 과학 연구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하버드대학교를 포함한 주요 연구기관들에 지원될 예정이던 20억 달러 규모의 연구비도 동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조치들이 “정부 낭비를 줄이고 깨어있는(woke) 이념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과학계는 이를 ‘명백한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일론 머스크가 수장으로 임명된 정부 효율성 부처는 “1조 달러 규모의 낭비와 사기를 제거하겠다”며 연방 과학자 수천 명을 해고했다. 이에 따라 미국 과학계는 연구 인프라뿐만 아니라 인력 기반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국립과학재단(NSF)도 수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잃었으며, 국무부는 국제 기후 협상 담당 부서인 국제 기후변화국(Office of Global Change)을 폐쇄했다.
맥스 홈스 우드웰 기후 연구소 소장은 “미국 과학의 우수성과 리더십이 국가를 강하게 만들었다”며, “이를 무너뜨리는 것은 단지 미국만의 손실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리더십 상실 우려… 세계 과학계도 충격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과학계를 이끌어 왔다. 특히,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 작성에서 미국 연구진은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과학 지원을 중단하면서, 향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애리조나대학교 대기 과학자 케빈 거니는 “미국의 과학 인프라는 단순한 데이터 저장소가 아니다. 우리는 전 세계가 참고하는 기후 모델과 데이터를 제공해왔다”며 “이제 그 토대가 무너지면서, 세계 과학계 전체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3월, 일본에서 열린 IPCC 회의에 미국 연방 정부 소속 과학자들의 참석을 금지했다. 대신 일부 민간 과학자들만이 자비로 참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 정부의 이탈로 인해 국제 보고서의 품질과 신뢰성까지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연방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미국 내 주요 연구기관들은 스스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지구물리연합(AGU)이 주도하는 미국 학술 동맹(U.S. Academic Alliance)이 발족해, 미국 과학자들의 IPCC 참여를 자체적으로 조율하기 시작했다. 대학과 민간 연구기관이 정부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것이다.
거니 교수는 “과학에 있어 일시적인 공백도 수십 년의 후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지금 우리는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사회 전반에 퍼지는 과학 쇠퇴의 여파
과학 연구는 단지 환경 보호를 넘어 미국 경제의 핵심 성장 동력이었다. 생명공학, IT, 우주항공, 제약 산업 등 세계를 주도한 혁신들은 모두 연방정부의 연구 지원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 이 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16년, 중국에 과학 논문 수에서 추월당했다. 이후 중국은 과학 연구에 천문학적 투자를 이어가며 세계 과학계를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과학 연구를 외면하는 사이, 혁신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할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브레인 드레인(두뇌 유출)’ 현상이다. 연구비 삭감과 직업 안정성 붕괴로 인해, 유능한 미국 과학자들이 독일, 캐나다, 중국 등으로 이주하고 있다. 각국은 거액의 연구비 지원과 탁월한 연구환경을 제시하며 미국 과학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과학에 대한 신뢰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과학기관들을 ‘좌파 이념에 오염된 조직’으로 공격하며, 대중의 과학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 대응에서 나타난 과학 무시 현상은 그 단적인 결과물이다.
과학계는 이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과학은 정치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텍사스공대 기후 과학자 캐서린 헤이호는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 후진 거울을 보면서 급커브를 돌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제대로 된 과학적 방향 감각 없이는, 결국 모두 벼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지금 과학적 리더십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자멸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과학 연구는 단순한 국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기후 위기, 신기술 개발, 공공 보건 대응 등 모든 글로벌 이슈의 핵심이다. 지금 과학을 버린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치르게 될 것이다.
미국 과학계는 사력을 다해 저항하고 있다. 대학과 민간 연구기관이 정부의 공백을 메우고, 국제사회와 협력망을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연방정부가 빠르게 복귀하지 않는다면, 미국 과학의 황금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