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농업이 기후위기와 토양 황폐화,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라는 삼중 압력에 놓이면서 ‘렌틸콩’ 같은 식용 콩과작물이 위기의 완충재가 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밀, 유채, 감자 등 소수 작물에 쏠린 생산 구조가 폭염과 봄 가뭄, 비정상적 홍수, 병해충 위험 변화에 취약하다는 경고가 커지는 가운데, 연구진은 렌틸콩을 포함한 콩과작물을 윤작에 다시 들이는 방안을 현장에서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동부 노리치의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 UEA에서 대학원생 마달리초 음군다가 주도하는 새 프로젝트는, 농가와 공급망의 현실적 제약까지 포함해 ‘렌틸콩 재도입’이 실제로 가능한 전환인지 따져보는 데 초점을 둔다. Plant Based News는 이번 연구가 비료 의존도를 낮추고 토양을 회복시키는 대안이 될지, 그리고 정책 논쟁 속에서 농가 수익성과 식량안보를 동시에 다룰 수 있을지 살펴보는 시도라고 전했다.
렌틸콩은 앞서 보도한 전 세계 소비자 75%, “식물성 고기·유제품에 여전히 관심”, 보르네오 숲 복원의 변수, 리아나 제거가 캐노피 높이를 3배 빠르게 키웠다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렌틸콩이 ‘작물 다변화’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이유
프로젝트가 겨냥하는 문제의 출발점은 영국 경작 구조의 편중이다. 영국에서 작물 재배에 쓰이는 땅은 전체의 20퍼센트 수준이고, 그 절반이 곡물 생산에 투입된다. 곡물 생산의 약 60퍼센트는 밀이며, 이 밀의 44퍼센트는 사람의 식탁이 아니라 농장동물 사료로 향한다. 식량안보 관점에서 보면, 기후 충격에 취약한 작물 중심 구조가 유지되는 동시에 생산물이 사료로 우회되는 비중도 크다는 뜻이다.
렌틸콩 같은 식용 콩과작물은 이런 구조 속에서 ‘전환 가능한 대안’으로 자주 언급된다. 콩과작물은 상대적으로 비용 효율이 높고 영양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토양 건강 개선과 비료 사용 저감 가능성이 논의돼 왔다. 연구진은 특히 밀, 유채, 감자 위주의 윤작 체계에 렌틸콩, 완두, 강낭콩 등 식용 콩과작물을 다시 포함시키는 것이 토양의 장기 생산성과 환경 부담을 동시에 줄일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구상이다.
영국 농업이 직면한 위기는 수확량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농가의 수익성도 흔들리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3분의 1이 넘는 농가가 이익을 내지 못했고, 이익을 낸 농가 중에서도 10퍼센트 이상의 이익을 보고했다고 답한 비율은 14퍼센트에 그쳤다. 생산 기반의 환경 문제와 경제적 압박이 맞물리는 상황에서, 렌틸콩 도입이 ‘생산성’과 ‘수익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따져보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폭염·가뭄·홍수·병해충… 연구가 주목하는 기후 리스크
연구를 이끄는 음군다는 영국의 주요 작물이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극심한 폭염, 봄철 가뭄, 계절을 벗어난 홍수, 변화하는 병해충 위험이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기상 이변의 나열이 아니라, 작부체계와 농업 투입재 전략이 바뀌지 않으면 위험이 구조화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렌틸콩을 포함한 콩과작물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투입재 의존’을 낮출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프로젝트는 콩과작물의 재도입이 비료 의존도를 낮추고 토양 건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지 살핀다. 영국 토지의 약 70퍼센트가 농업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작물 선택과 농법의 변화는 생태계 건강과 온실가스 감축, 물 관리에 광범위한 파급을 낳는다.
토양 문제도 연구의 핵심 배경이다.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작지 토양 중 거의 40퍼센트가 현재 황폐화된 상태로 평가되며, 주요 원인으로 집약적 축산 중심 시스템이 거론된다. 토양이 약해질수록 가뭄과 폭우에 대한 완충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 농가가 더 많은 투입재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생기기 쉽다. 렌틸콩을 포함한 콩과작물 전환이 이런 악순환을 완화할 수 있는지, 이번 프로젝트가 현장 데이터를 통해 답을 찾겠다는 셈이다.
노퍽 현장과 공급망까지… ‘가능성’이 아니라 ‘실행 조건’을 묻다
이번 연구의 특징은 농장 단위의 재배 가능성뿐 아니라 공급망 현실을 함께 보겠다는 점이다. 음군다는 이 연구가 노퍽 지역 농가와 더 넓은 공급망이 직면한 현실을 탐색하고, 렌틸콩 생산을 더 실현 가능한 선택지로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렌틸콩이 기후와 토양 측면에서 장점이 있을 수 있어도, 실제 재배 면적이 늘려면 가공, 유통, 계약 재배, 가격 신호, 수요 안정성 같은 조건이 동시에 맞아야 한다. 영국 소비 시장에서는 식물성 식품이 건강과 환경을 이유로 꾸준히 논의되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판로와 가격이 불안정하면 새로운 작물로 옮겨타기 어렵다. 연구가 ‘현실과 공급망’을 강조하는 이유는 전환의 기술적 타당성과 별개로, 시장 구조가 전환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렌틸콩은 ‘사료용 곡물’ 비중이 큰 구조와도 연결된다. 밀 생산의 상당 부분이 사료로 쓰인다는 사실은, 곡물 재배가 단지 식량 공급이 아니라 축산 시스템의 유지 장치로 기능해 왔음을 보여준다. 콩과작물 재배 확대가 사람의 식탁으로 직접 연결되는 비중을 늘릴 수 있다면, 식품 산업의 원료 조달 구조와 소비자 선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렌틸콩은 단순한 작물의 하나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식단과 농업 구조 재편 논의의 매개로 떠오른다.
정책 논쟁의 한가운데 있는 렌틸콩… ‘로드맵’과 현장의 간극
렌틸콩을 포함한 콩과작물 전환 논의는 정책 영역에서도 진행 중이다. 기사에 따르면 영국의 새로운 농업 로드맵은 비효율적이고 지속가능성이 낮으며 동물복지와 환경, 건강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축산에서 벗어나 콩과작물과 더 지속가능한 작물 재배로 전환하자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 논의는 환경 정책과 식량안보, 보건 정책, 농촌 경제가 한꺼번에 맞물리는 의제로 확장되고 있다.
다만 해당 로드맵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도 받았다. 지속가능한 식품과 농업을 주장해 온 단체 서스테인, 농업 로비 단체인 전국농민연합 NFU, 그리고 농민들로부터 비판이 나왔다는 점이 전해졌다. 비판의 핵심에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하고, 전환을 뒷받침할 새로운 재정 지원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놓여 있다. 전환이 구호로만 남지 않으려면 농가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을 누가 어떻게 분담할지, 가공과 유통 인프라를 어떻게 확보할지 같은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UEA 연구 프로젝트는 로드맵의 이상과 현장의 제약 사이를 메우는 실증 작업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렌틸콩 재배가 토양과 투입재, 수익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공급망에서 어떤 병목이 발생하는지, 농가가 전환을 결심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 무엇인지가 구체화되면 정책 논쟁도 보다 현실적인 근거 위에서 진행될 수 있다.
환경과 동물복지, 식품 산업의 변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렌틸콩은 ‘지속가능한 농업의 상징’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수익과 위험, 노동과 설비, 계약과 가격이 전환을 좌우한다. 이번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낙관적 구호보다 더 직접적이다. 렌틸콩이 영국 농업을 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영국 농업과 정책이 렌틸콩 같은 전환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는 물음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