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폭우 시대, 경보는 왜 늦었나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120시간 동안 이어진 호우로 전국에서 18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다. 가장 큰 피해가 난 곳은 경남 산청군이다.

지역별 사망자는 산청이 10명, 경기 가평 2명, 충남 서산 2명, 경기 오산·포천, 충남 당진, 광주 북구 각각 1명이다. 실종자는 가평과 산청 각각 4명, 광주 북구 1명으로 집계됐다. 현재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인명피해는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17일 새벽 시천면에 시간당 101㎜가 퍼부으면서 산사태가 발생, 10명이 목숨을 잃고 4명이 행방불명됐다. 하지만 산림청이 18일부터 “경보 격상”을 권고했음에도 산청군이 ‘주의보→경보’로 단계를 올린 시각은 사고 직후인 19일 12시 37분이었다.

재난 문자는 13분이 더 지난 12시 50분 04초에야 발송됐다. 중앙(산림청)과 지자체로 갈라진 이원화 체계가 73분의 골든타임을 삼켜 버린 셈이다. 경기 가평군 조종면 역시 대피령이 산사태 21분 전에야 휴대전화로 전파돼 2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 무선 확성기는 빗물 소리에 묻혔고, 현장 공무원도 없었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이 문제의 원인은 이원화된 책임 구조에 있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산림청이 전국 산사태 위험도를 산출·통보하지만, 실제 경보 격상과 문자 발송 권한은 기초‧광역단체에 있다. 중앙이 1단계(예비경보)를 올려도 현장에서 “아직 괜찮다” 판단하면 체계가 멈춘다. 그래서 산림청과 지자체의 온도차가 있으며 밤샘 호우처럼 짧은 시간에 상황이 뒤집히는 조건에서는 결제라인을 거치는 순간 경보는 한 박자 늦게 된다.

‘면’에서 ‘점’으로…

올해 장마는 과거처럼 전선이 남북으로 이동하며 넓게 비를 뿌리는 대신, 좁은 지역에 폭우 셀(cell)을 집중시켰다.

충남 서산시청엔 이틀 새 519.3㎜가 쏟아졌지만 20㎞ 떨어진 대산읍은 140.5㎜였고, 전남 담양 봉산면 379.5㎜·담양군청 82.5㎜처럼 40㎞ 내에서도 강수량이 최대 10배 차이를 보였다.

배경에는 평년보다 1℃ 이상 높은 해수면이 북태평양고기압을 북상시켜 수증기를 몰아넣고, 차고 건조한 절리저기압이 상층에 정체하며 뜨거운 공기와 충돌하고, S자형 산맥과 복잡한 해안선이 비 구름을 특정 골짜기에 가둬 증폭시키는 복합 작용이 자리 잡았다.

기상청은 “읍·면 단위 강수 집중 구역을 시간 단위로 특정하기엔 현재 기술로 한계가 분명하다”고 토로한다.

게다가 현대 과학의 한계로 레이더 자료와 위성 자료를 합쳐도 뇌격형 비구름(세로 두께 12~15km)는 30분만에 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상청의 관측 정보를 모아 모델에 넣고 결과를 품질 검사 후 시각화 한 뒤, 재난 기관에 넘기는 동안은 15~25분이 소요된다. 그 사이 구름은 이미 다른 읍과 면으로 이동해버리는 동기화의 문제도 존재한다.

환경부 한강홍수통제소는 지난달 30일 ‘제2차 수문조사기본계획(2020~2029) 변경안’을 고시했다. 홍수특보지점 전체에 자동유량계를 설치하고 수위계 459곳, 도로 침수계 409곳을 추가 배치해 관측망 공백을 메워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위기경보 주체 단일화 △AI 기반 초단기 예보 확대 △휴대전화·드론·차량 스피커 등 다중 채널 동시 경보 △일본식 레드존(위험)·블루존(대피) 모델 도입을 통해 ‘강제 대피령’까지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실제로 2025년 6월 북이탈리아 롬바르디아(사망 26명)와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사망 120명), 5월 태국 치앙마이(도심 수위 3m) 등 전 세계가 ‘열대 해수 온난화+대기 정체’라는 같은 퍼즐 조각을 마주하고 있다.

“홍수는 예측이 아니라 사회계약”이라는 결론은 분명하다. 수문 데이터와 경보 체계가 한눈에 보이는 ‘라이브 재난 계기판’을 마련하고, 경보가 울리면 이동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인식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산청·가평은 내일 또 다른 도시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21세기 한국 재난 거버넌스의 성적표는, 다음 물폭탄이 떨어질 때 ‘우리는 몇 시에 알림을 받고 어디로 대피했는가’라는 질문에 달려 있다.

More from this stream

Recome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