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파사르(Alain Passard). 그는 브르타뉴 출신의 프랑스 셰프로,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 왔다. 그는 생선과 고기 요리에 탁월한 기술을 가진 로티셰르(rôtisseur)로서 직화요리에 장점이 많았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조리 철학을 대폭 전환했다.
1986년, 그는 멘토인 알랭 센더렌(Alain Senderens)으로부터 레스토랑 L’Archestrate를 인수하여 아르페주(Arpège)라는 이름으로 재탄생시켰다. 음악과 요리에 대한 열정을 담은 명명이었다.
첫 해부터 미슐랭 1스타를 받았고, 1996년에는 3스타를 획득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또한 2010년 Gault & Millau의 5토크 상, 2018년 세계 50대 레스토랑 중 8위 선정 등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2001년. 그는 자신의 미식 철학을 완전히 재정의하며 고급 요리계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파리의 전설적인 레스토랑은 지난 40여 년간 프랑스 요리의 정수를 보여줬지만 이제 이곳은 고기, 유제품, 생선, 계란을 전면 배제하고, 유일한 동물성 식재료로는 자가 양봉장에서 얻은 꿀만을 남긴 채 식물성 메뉴로 완전히 전환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레시피의 수정이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 요리 전통의 본질에 도전하는 문화적 전환이며, 아르페주는 이제 단순한 식당이 아닌 혁신의 상징이자 철학적 선언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채소 중심 요리로 혁신
파사르는 2001년 붉은 고기를 완전히 제외한 메뉴를 발표하며,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 중 처음으로 채소 중심 요리를 도입했다. 이후 일부 동물성 재료를 다시 사용하긴 했으나, 그의 요리 철학은 이미 식물 위주로 전환되었다.
이후 그는 2002년, 2005년, 2008년에 걸쳐 서로 다른 토질을 가진 프랑스 서부 지역에 세 개의 자가 재배 채소 밭(사르트, 외르, 망슈)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해마다 약 40~50톤의 유기농 채소와 허브, 레드·블랙 베리 등을 재배하며, 이를 당일 배송해 냉장 없이 바로 사용한다.
파사르는 이렇게 말한다. “채소 요리는 파괴적이며 놀라움으로 가득합니다. 토마토나 당근, 가지에는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파사르는 채소를 요리의 캔버스로 보고, 색채 조화와 질감의 조율을 중요시한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요리가 공존하던 가정 환경에서 자란 그의 감수성은 현재의 요리 철학에 투영된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비유한다. “채소는 옷감이다. 나는 요리사의 재단사 같다. 계절은 나의 컬렉션이다.”
아르페주는 자급자족하는 자가 농장 시스템을 갖춘 유일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으로, 매일 수확된 채소를 냉장 없이 바로 주방으로 이동시킨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12명의 정원사와 6헥타르 규모의 농장, 자연농업 방식 및 견인 가축(당나귀, 말, 염소 등) 사용이다.
드디어 비건
아르페주는 최근 발표된 모든 메뉴를 비건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요리 철학에 따라 결정된 부분이다. 파사르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 중심 요리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지만, 이제 나는 예술적인 감정의 요리를 추구합니다.”
미슐랭 가이드도 이러한 방향을 존중하며, 아르페주의 혁신을 지속적으로 따라가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전통 요리의 중심에 있던 아르페주가 식물 중심 미식을 대표하게 된 것은 프랑스 미식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프랑스 요리의 갈림길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육류 중심 요리의 본산이다. 코크 오 뱅, 카술레, 블랙 푸딩(부댕 누아르) 등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국민 정체성 그 자체다. 그런 전통을 거스른다는 것은 사회적 도전이자 철학적 선언이다. 그러나 현실은 바뀌고 있다.
2003년부터 2023년까지, 프랑스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6%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동안 식물성 식품 시장은 빠르게 성장, 2024년에는 5억 3,700만 유로 규모에 도달하며 유럽 내 3위의 비건 식품 시장으로 부상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전체 식사의 60%를 고기 없는 메뉴로 구성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었지만, 단백질 부족 등의 문제로 일부는 철회되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비동물성 식단이 제도적 수준에서도 논의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였다.
왜 셰프들이 채소를 선택하는가
고기와 달리, 채소는 가공 방식에 따라 무한한 변주가 가능하다. 비트는 구우면 달콤해지고, 절이면 산뜻해진다. 당근은 카라멜화, 퓌레, 칩, 쥬스 등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전혀 다른 요리로 변신한다.
이러한 가능성은 셰프에게 무한한 실험의 무대를 제공하며, 계절과 순간에 따라 영감이 변주되는 즉흥적 예술로 이어진다.
전통적으로, 미슐랭 가이드는 고전 요리 중심의 평가 기준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속 가능성, 창의성, 윤리성에 기반한 평가로 확장되고 있다.
이 말은 조용하지만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훌륭한 요리는 더 이상 푸아그라나 송아지 고기와 동의어가 아니며, 창의성과 균형이 핵심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아르페주의 식물 기반 전환은 단순한 메뉴 변경이 아닌, 21세기 미식의 미래를 예고하는 선언이다.
파사르 셰프는 계절을 따르고, 대지를 믿으며, 칼을 예술가의 붓처럼 사용하는 셰프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결정은 한 레스토랑을 넘어, 프랑스 미식 전통 전체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다.











